[토요판 커버스토리]옛 동화은행 퇴직자 66% “사업실패 등으로 생활고”

송충현기자 입력 2014-11-29 03:00수정 2014-11-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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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금융맨들은 지금]외환위기때 거리에 내몰린 금융맨들은…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은행원이 실직자가 돼 거리로 쏟아졌다. 누구는 해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속옷을 싸들고 농성장으로 갔다. 차마 가족들에게 실직 사실을 알리지 못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척 나와 공원으로 ‘출근’한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은행원들의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금융권에서 벌어졌던 ‘잔혹사’다. 최근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직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금융권 종사자 9만 명 거리로

IMF 구제금융 이후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건 1998년 6월부터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경기 대동 동남 동화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을 시장에서 퇴출한다고 발표했다.

은행의 대규모 감원 움직임은 1998년 초부터 감지됐다.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금융권에 부실 경고등이 켜지며 은행들의 지점 통폐합과 감원이 이어졌다. 제일은행 퇴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명 ‘눈물의 비디오(내일을 준비하며)’가 만들어진 시기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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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6월 5개 은행이 무더기로 문을 닫게 되면서 국내 금융권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어갔다. 5개 은행에서 9000여 명의 은행원이 직장을 잃었다. 정부는 5개 은행을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구조조정했다. 인수 은행이 피인수 은행의 우량자산과 부채만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고용승계 의무는 없었다. 필수 인력을 제외한 대다수의 인력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살아남은 은행들도 감원 ‘칼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은행들은 인수합병을 거치며 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수백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00년에는 한빛은행에서만 약 900명의 직원이 명예퇴직 형식으로 직장을 떠났다. 2001년 8월 IMF 관리체제를 졸업할 때까지 금융권 전체에서 약 9만 명이 직장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가족 흩어지고 생활고 시달려

은행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직원들의 삶은 망가져 갔다. 당시 대한민국 경제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산소마스크에 의존하던 상태였다. 인력을 줄이겠다는 회사는 있어도 새로 사람을 뽑는다는 회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은행에서 나온 이들은 분식점, 빵집 등을 차려 영세 자영업자가 되거나 아파트 경비원, 대리운전 기사 등 계약직의 문을 두드렸다. 거리 곳곳에 식당, 오락실, 치킨집이 앞다퉈 문을 열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동아일보가 1998년 동화은행이 문을 닫고 6년이 지난 2004년 동화은행 퇴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자영업에 도전했던 사람 중 80%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실패 등으로 은행원으로 재직할 때보다 경제적 지위가 하락했다는 이들도 66%에 달했다.

동화은행 지점장 출신의 A 씨는 해직된 뒤 거주하던 아파트를 처분해 얻은 4억 원으로 옷가게, 갈비집, 노래방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자산을 모두 날렸다. 자영업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B 씨는 술집 웨이터나 공사장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는 가정의 해체였다.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집 바깥을 맴돌았다. 노숙인을 위한 무료 배식소에 은행원 출신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가장(家長)이 무너지자 가족의 유대도 약해져 갔다. 별거를 하다 자녀가 결혼한 뒤 합의 이혼하는 부부가 속출했다. 자녀들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군대를 가거나 대학을 휴학하고 학비를 벌었다. 금융권 구조조정이 빚어낸 씁쓸한 한국의 현대사 중 한 페이지의 모습이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외환위기#금융맨#동화은행 퇴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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