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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메구미 생존’이 北-日교섭 전제… 아베 정부 진퇴양난

입력 2014-11-08 03:00업데이트 2014-11-08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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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교섭 먹구름]납북 메구미 약물사망
“납북 일본인 구해달라” 일본에서는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큰 실종자(특정 실종자)의 가족 등도 구출
 캠페인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야마구치 현 우베 시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야마구치의 모임’ 블로그“납북 일본인 구해달라” 일본에서는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큰 실종자(특정 실종자)의 가족 등도 구출 캠페인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야마구치 현 우베 시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야마구치의 모임’ 블로그
일본 정부가 요코타 메구미(橫田惠)가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동아일보 보도를 전면 부인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본보 보도를 인정했을 때 메구미 생존을 전제로 추진해온 북-일 교섭의 기본 토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본보 보도 부인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도덕성 논란과 함께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장관은 7일 ‘일본 정부는 메구미가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조사보고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일 교섭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사전에 관련 정보를 알고도 피해자 가족과 국민에게 헛된 희망을 준 것으로 드러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타격은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일본 ‘메구미 생존’ 신앙의 그늘

집권 초기 70%대로 고공행진하던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올해 초를 고비로 40∼50%대로 떨어졌다. 특정비밀보호법, 집단적자위권 등 우파 정책을 강행하면서 국민의 경계감이 커졌던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주춤한 상태에서 4월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서민 부담이 커진 것도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납북자 문제 재조사 합의와 여성 각료들을 앞세운 9월 개각으로 지지율 60%대 회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여성 각료들이 부메랑이 됐다.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명이 한꺼번에 사퇴했다. 지지율도 40%대로 급락했다.

이런 가운데 메구미가 사실상 타살됐다는 증언이 나온 것은 정권 운영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스가 장관이 관련 보도를 강력히 부인한 것은 국내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읽힌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일본 사회에서 ‘메구미 생존’은 일종의 신앙으로 통한다. 언론에서도 피해자 가족이나 정부에 메구미 생사 관련 질문을 하는 것은 금기시될 정도다. 일본 민주당 중진인 이시이 하지메(石井一) 전 국가공안위원장은 8월 29일 자신의 훈장 수상 기념파티에서 “일본 정부는 아직 요코타 메구미 씨 등을 돌려보내라고 떠들고 있지만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 북-일 교섭 앞날에 먹구름

‘메구미 생존’ 이외의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는 일본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살아 있는 메구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메구미 생존’을 전제로 한 북-일 교섭의 앞날은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메구미 대신에 다른 실종자나 일본인 처, 일본인 유골 등을 내주면서 추가 제재 해제를 요구해온다면 일본 정부는 북한과 국민감정 사이에 끼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일본 정부대표단이 북한으로부터 다음 조사 결과를 언제 보고받을지조차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한 것은 이런 배경 탓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메구미의 사망을 국민이 차츰 받아들이도록 ‘출구 전략’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한다. 메구미 사망이 확인됐을 때 피해자 가족과 국민이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일본 정부의 양해 속에 메구미 사망 관련 조사보고서 내용을 밝혔다고 증언한 것이 이런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메구미 부모가 올해 3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외손녀인 김혜경 씨를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석을 감안하면 아베 정권은 ‘출구 전략’과 ‘정치적 타격’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은 6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납치피해자 조기구출을 위한 집회에서 “아무런 진전도 없는 가운데 올해도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번 방북에 이어 다음 수를 쓰지 않으면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메구미의 어머니인 사키에(早紀江·78) 씨는 “좋은 결과가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딸의 조기 귀환을 호소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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