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세계가 한국을 보는 窓’ 주한 외신기자들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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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韓派 많지만… 한국말 제대로 못하는 특파원도 많아

1월 21일 방한했던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창’ 역할을 하는 주한 외신기자들이 번스 부장관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동아일보DB
1월 21일 방한했던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창’ 역할을 하는 주한 외신기자들이 번스 부장관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동아일보DB
#에피소드 1

올해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장. 연설을 끝낸 박 대통령이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쓰지후치 사토시(십S智之) 일본 도쿄신문 특파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한 시간의 회견 내내 손을 들었지만 사회를 맡은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그에게 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외신의 경우 사전 지정된 영국 로이터통신, 중국 CCTV 기자에게만 질문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견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기자실을 방문하자 그는 “왜 일본 기자에게는 질문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를 하는 모습도 생경했지만 일본 기자의 행동은 불편한 한일관계 속에 결례로 비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에피소드 2

2010년 3월 9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초청 기자간담회. 에번 램스태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한국 여성의 직장 참여가 저조한 것은 남성의 룸살롱 문화 때문 아니냐” “기재부 직원들이 유관기관으로부터 룸살롱 접대를 받는다는데 접대의 기준이 뭐냐”는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김영민 기재부 외신 대변인이 간담회가 끝난 뒤 “장관에게 하기에는 부적절한 질문이었다”고 지적하자 램스태드 기자는 대변인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 그는 “욕을 한 것이 부끄럽다”며 사과 e메일을 김 대변인에게 보냈지만 다른 방송에 출연해 “룸살롱 질문은 누군가는 물었어야 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에피소드 3

2003년 1월 10일 도널드 커크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서울 특파원은 김석중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가 인터뷰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책목표는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 인수위와 전경련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지사. 김 상무는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쓴 기억이 없고 휴대전화의 감이 좋지 않아 발언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수위에 해명서를 전달하는 한편 커크 기자에게 기사 정정도 요구했다. 하지만 기사는 고쳐지지 않았고 김 상무는 본인의 의사와 달리 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이후에도 커크 기자는 ‘햇볕정책은 신기루로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됐다’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포퓰리스트의 승리’ 등 논란성 기사를 여러 차례 출고했다.
주한 외신기자들은 국제사회가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최일선의 창(窓)이다. 그들이 어떤 정보를 어떤 시각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울 주재 외신기자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취재 활동을 할까.

올해 2월 현재 해외문화홍보원에 등록된 주한 특파원은 15개국, 87개 매체에서 파견된 241명이다. 영어권은 물론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으로 기자를 파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본 언론이 가장 많아 99명에 이르고 미국(52명), 중국(25명) 순이다. 언론사 가운데 특파원이 가장 많은 곳도 일본 방송으로 NHK가 기자 13명을 등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로이터통신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신기자 등록과 기자증 발급 업무는 해외문화홍보원 산하 외신지원센터에서 맡고 있다. 등록 요건은 까다롭지 않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사이거나 해외문화홍보원장이 인정한 언론사 소속이면 된다. SFCC는 미국의 외신기자클럽(FPC)을 본떠 1956년 만들어진 곳으로 유명 인사 초청 간담회나 특파원들의 풀(pool·공동) 취재를 주선하는 역할을 한다. WSJ 특파원의 욕설사건도 SFCC 간담회에서 생겼던 일이다.

외신기자로 등록하는 것은 최소한의 신원 인증 절차로 여겨진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기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외신지원센터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기자증에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넣어 신분증처럼 사용하게 했으나 올해부터 개인정보는 삭제했다”고 말했다. 외신 기자증의 유효기간은 매년 12월 31일까지다. 1년짜리 신분증으로 매년 갱신해야 한다. 이는 한국 체류를 위한 외신용 취재비자도 마찬가지다.
특파원, 기자, 지국장, 스트링어…

주한 외신기자에 대한 호칭은 다양하다. 특파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correspondent’를 쓰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기자라는 의미의 ‘reporter’를 쓰기도 한다. 명함에 지국장이라는 의미의 ‘bureau chief’로 표기하는 기자도 있는데, 1인 사무실로 운영되는 단신(單身) 지국 기자도 자신을 지국장이라고 소개해 호칭에 인플레이션 경향이 있다.

스트링어(stringer) 문제도 특파원 세계의 호칭 인플레가 드러나는 경우다. 통역과 취재지원을 위해 특파원에 고용된 직원을 뜻하는 스트링어는 엄밀히 말해 기자가 아니다. 영어사전에도 ‘비상근 통신원’이라고 나온다. 그럼에도 서울 주재 외국 언론사 사무실에 ‘스트링어’라는 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 기자’라는 명함을 사용하고 스스로를 기자라고 부른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가 반영된 독특한 현상이다. 많은 외국 언론사 지국에 한국인 ‘기자’들이 존재하지만 그들 이름의 기사를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외신기자는 내신(內信)과 달리 고정된 출입처가 없다. 대부분 4, 5명 안팎인 소규모 인력으로 모든 출입처를 담당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돌발 사안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사안별로 대응한다. 2009년 부산의 사격장 화재사고 때 일본인 관광객의 희생이 커지자 서울에 있던 일본 기자들이 대거 파견되는 식이다.

하지만 평소 외신기자가 몰린 곳을 보면 한국에 대한 외국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분단과 남북 대치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외신들은 청와대를 비롯해 외교·국방·통일 등 안보부처에 집중적으로 기자들을 배치하고 있다. 외교부와 통일부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대부분이 출입기자로 등록한 반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각각 등록기자가 8명과 6명에 불과하다. 안보 문제를 집중 취재하도록 배치하고 경제부처의 기사는 부수적으로 챙기도록 한 구조다.

대부분의 외신기자들이 한국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부임하는 것도 한국에 대한 고정된 기사 형태(스테레오 타입)를 반복 생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분단국=남북갈등’이라는 등식을 갖고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북한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그리고 3, 4년 뒤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될 즈음 다른 부임지로 떠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유력 영어권 신문기자 A 씨는 “기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중국이나 일본 주재기자가 발령받기 전에 해당 언어부터 배운 뒤 임무에 투입되는 것에 비하면 아직 한국이 홀대받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사안의 배경설명엔 외신 제한

정부는 외신의 수요가 많은 곳에 외신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다. 대표적인 부처가 청와대이고 외교부에도 해외언론담당관이 있다. 외교부 담당관은 주한 외국 언론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주요 언론의 한국 관련 기사를 모니터링해 대응하는 일도 맡는다. 북한 관련 문제로 외신의 취재 수요가 많은 통일부는 영어 채널인 아리랑TV 출신의 박수진 씨를 부대변인으로 기용했다. 이 밖에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련 부처가 외신 담당자를 두고 있다.

담당자들은 외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이를 두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경제부처는 비등록 외신과도 자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브리핑도 한다. 반면 안보나 외교 사안을 다루는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는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설명)’을 진행하면서 내신기자만으로 참여를 제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국익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 중요 정보를 외신과 공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신은 차별한다며 투덜댄다. 특히 4년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외신 취재가 전면 불허된 것에 외신들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한국에서 내신이 역차별을 받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취재원이 주한 일본대사관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주한 일본기자단만을 상대로 벳쇼 고로 일본대사가 직접 간담회를 갖는다. 지국장급 일본인 특파원 B 씨는 “이 모임에서 의미 있는 정보가 오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재국 대사가 특파원을 매주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정서나 시각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주한 미대사관 관계자는 “주요 인사 방한이나 이슈가 생기면 그때 설명회를 갖지만 일본과 같은 정기모임은 없다”고 말했다.
갈수록 경계 모호해지는 내외신 구분

1월 13일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한국 정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권고를 동일하게 비난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최상훈 NYT 서울 특파원이 교과서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를 본사에 제공했기 때문 아니냐고 따졌다. 하지만 최 특파원은 “사설 작성에 앞서 본사로부터 교과서와 관련해 어떤 문의나 의견교환도 없었다”며 이를 부인했다. 한국과 관련해 잘못된 외신 기사가 나오면 특파원 개인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관행은 외신의 서울지국이 홍콩 태국에 있는 아시아총국이나 미국 등 본사의 지시를 받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주(駐)뉴욕 총영사관을 통해 NYT 본사에 항의했고 2월 12일 NYT에 반박 기고문이 게재됐다.

한국인이면서 외신에 소속돼 그들의 구미에 맞게 기사를 작성하는 외신기자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속칭 ‘검은 머리 외국기자’들도 고충이 적지 않지만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 매체에 소속된 한국인 기자들의 한숨도 부쩍 늘었다. 일본방송의 한국인 기자 C 씨는 “독도나 교과서 문제 보도에 한국 입장이 반영되도록 서울지국장 또는 본사와 거의 매번 싸우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외신기자의 정체성과 더불어 외신과 내신의 경계도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이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의 경우 한국어와 영문 기자를 따로 등록하고 있고 WSJ와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잇달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인 기자가 한국 독자를 겨냥해 한글로 작성한 기사를 내외신 가운데 무엇으로 봐야 할지 불분명해지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리아헤럴드, 코리아타임스 등 국내 영자신문이나 연합뉴스 영문(英文)서비스 기자 출신이 외신 소속이 됐다가 다시 국내 영어 매체로 복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2011년부터 아리랑TV 사장을 맡았다가 최근 물러난 손지애 씨 역시 CNN 서울지국장 출신이다.  

▼ “일본해 아니라 동해… 다케시마 아니라 독도!” ▼
한국말 술술… 러 국영신문 로시스카야 가제타의 키리야노프 지국장



“노랑머리 외신기자라고 해서 모두 미국 기자는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러시아 국영신문인 로시스카야 가제타의 서울지국장 알렉 키리야노프 씨(41)는 유창한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키리야노프 씨는 서울 토박이만큼이나 한국 전문가다. 러시아 명문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어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외교부 근무를 거쳐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이 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러시아 총영사관이 있는 부산에서 두 번째 한국 근무를 하고 있다. 한국 체류기간을 합치면 올해로 10년째가 된다.

대부분의 외신 특파원이 한국말조차 익히지 못한 채 서울에 부임하는 것에 비하면 그는 ‘준비된’ 외신기자다. 유력 외신들이 일본 도쿄(東京)에 특파원을 두고 한국을 취재하도록 하는 것과 반대로 그는 한국에 머물며 일본까지 담당하고 있다. 본사에서는 중국 근무를 권했지만 그가 고집해 한국 재부임을 성사시켰다.

키리야노프 씨는 “9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할 때 마침 이뤄진 한소 수교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 전공을 택했고, 기자가 된 이후에는 한국의 역동성에 끌려 계속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단 하루도 심심할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 관련 기사를 쓸 때 ‘동해’를 먼저 쓴다. 필요하면 괄호 안에 일본해라고 병기한다. 독도를 쓸 때도 ‘다케시마’보다 ‘독도’가 우선이다. 한국을 제대로 알고 기사를 쓰는 외신기자가 왜 필요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보도 주제도 북한 문제뿐 아니라 강릉단오제 등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외신으로서 한국의 취재환경이 어떠냐’고 묻자 키리야노프 씨는 “외신이라서 특별히 불편할 건 없는데 한국 사람들이 외신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 가운데 하나라도 이름을 아는 한국 사람이 드문 데다 노랑머리 기자는 모두 미국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또 ‘러시아=친북’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려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러시아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북한보다 한국을 더 가깝게 생각한다”며 “기사를 쓸 때도 친한, 친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 준(準)전문가가 된 키리야노프 씨는 ‘정식’ 전문가가 되기 위해 현재 모스크바대에서 북한 경제를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외신기자#월리엄 번스#특파원#키리야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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