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김갑식 기자의 뫔길]법정스님과 간장국수

입력 2014-02-28 03:00업데이트 2014-02-28 11:2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 ‘T’은 몸과 마음을 합친 말입니다. 매주 한 번 종교 현장에서 만나는 종교인에 얽힌 사연과 화제를 소개합니다. T길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사연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

서울 조계사 근처에 승소(僧笑)라는 음식점이 있다. 이곳은 조계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미역옹심이를 판다.

스님들이 국수나 냉면 같은 밀가루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것은 소문난 사실이다. 그래서 절집에서는 국수를 승소면(僧笑麵)이라고 부른다. 스님들이 국수를 보면 저절로 방긋방긋 웃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오죽하면 밀가루로 쑨 풀이 발라져 있는 문풍지를 보고도 침을 꿀꺽 삼킨다는 말이 나올까.

25일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 4주기 추모법회에 다녀왔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법회에 모인 추모객이나 스님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조계종에서 주요 소임을 맡은 스님들도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길상사와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청빈의 삶을 살다간 스님의 뜻을 기려 조촐하게 치른다고 밝혔지만 아쉬웠다.

차분하게 진행된 이날 법회에서 예전처럼 등장한 것은 스님 영정 앞의 간장국수. 잔치국수지만 자극적인 향신료 없이 간장으로 간을 맞춰 이렇게 불린다. 스님이 생전 워낙 좋아했던 음식이라 매년 추모법회 때마다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절집 음식답게 버섯과 다시마로 국물을 연하게 내고 간장으로만 간을 맞췄다.

간장국수에는 송광사 불일암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던 법정 스님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평소 스님은 인사치레나 번잡한 일을 독을 보듯 싫어했다.

법흥 스님의 추모사다. “젊은 시절 법정 스님에게 다른 절에 가서 소임 맡아 같이 지내자고 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어. ‘공부하는 데 방해되게 뭐 그런 짓을 쓸데없이….’ 스님이 공부에는 무척 열심이고, 이기적이었어.(웃음)”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법정 스님은 소박한 삶을 꾸려가면서 자신에게 철저했다. 그래도 불일암에 불청객들이 들이닥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스님은 금세 간장국수를 내놨다고 한다.

열이면 열, 간장국수는 불청객들에게 별미였다는 평가다. 그들이 맛을 본 것은 국수뿐 아니라 스님 삶의 한 자락 아니었을까.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