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복지’보다 ‘선별 복지’ 선호… “대선공약 실현 힘들어” 57%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1일 03시 00분


■ 건전재정포럼-재정학회 ‘국민 복지의식 여론조사’

건전재정포럼이 30일 공개한 ‘국민들의 복지의식 여론조사’(한국갤럽) 결과는 복지 이슈 전반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인식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국민은 대선후보들이 내놓는 복지공약들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특히 여야가 공히 강조하는 전(全)계층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 공약들도 대체로 선호하지 않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더 많은 복지혜택을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지는 않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리도 나타났다. 정치권은 이제껏 복지를 늘리겠다는 약속만 많이 했을 뿐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복지공약이 초래할 현실에 국민이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건전재정포럼은 전직(前職) 경제부처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들과 민간 재정학자, 중견 언론인들이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다. 포럼은 31일 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엄청난 복지재원, 돈은 어디서 나오나?’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연다.

○ 국민 “복지공약 지속 가능성에 의문”

이번 조사에서는 정치권에서 나오는 복지공약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연령, 이념을 막론하고 국민의 우려가 크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전체 1020명 가운데 274명) 중 69.2%가 ‘고소득 계층에도 무상보육 등 복지 혜택을 줘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 공약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또 이들 274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2%는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이 ‘별로’ 또는 ‘전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연령별로 봐도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30대 응답자들(209명)의 66.7%가 선별적 복지를 원했고 46.5%는 공약의 현실성을 낮게 봤다.

‘복지 수준이 지금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데에는 모든 연령층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한 응답자들(314명)도 57.8%는 복지 확대가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59.3%가 ‘많이 또는 어느 정도 있다’고 답해 국민의 복지에 대한 태도가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증세(增稅)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국민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추가 납세 의향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래도 세금 인상은 최후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복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44.3%는 ‘정부의 (복지 부문 이외 다른 부문의) 재정 지출을 축소해야 한다’, 28.8%는 ‘면세(免稅)자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각각 답했지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는 답변은 14.1%에 그쳤다.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 방안을 세목(稅目)별로 물었을 때도 절반 이상(53.1%)이 ‘부유세 도입’을, 36.9%가 ‘법인세 인상’을 원했지만 일반 국민의 실제 세 부담이 높아지는 ‘부가가치세 및 소득세 인상’을 꼽은 응답자는 7.1%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부가세 인상에는 74.0%가 반대했고 소득세 과세 범위를 확대(면세자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찬성(41.6%)과 반대(49.9%) 의견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이 같은 엇갈린 반응은 고소득자의 탈세 등으로 부자들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생긴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조세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유럽 선진국은 세금을 많이 내도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국민의 확신이 있어 조세 저항이 크지 않다”며 “우리 정부도 복지정책과 세정(稅政)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 이런 현상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권의 복지 재원 대책은 빈약

복지공약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이렇게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수십조 원에 이르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결국 세율 인상 등 실질적인 증세가 필요한데 정작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각 후보가 문제의 공론화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현행 10%인 부가세 세율을 0.2%포인트 올리면 연간 1조 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수(稅收) 확대에 기여하는 규모만 봤을 때는 부가세가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유층과 빈곤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간접세’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권의 반응은 소극적이다.

각 대선후보는 대신 상대적으로 조세 저항이 작은 소득세와 법인세의 인상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새누리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38% 적용 구간을 현행 3억 원 초과에서 2억 원 초과로, 민주통합당은 1억5000만 원으로 낮추자고 각각 제안한 상태다. 법인세는 민주당이 현행 최고세율(22%)을 25%로 높이고 적용 구간도 과세표준 500억 원 초과에서 200억 원 초과로 낮추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방식만으로는 늘어나는 세수가 기껏해야 연간 수조 원 안팎에 불과해 목표로 하는 재원 마련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재원의 60%는 정부의 기존 지출 감축으로, 40%는 비과세·감면 축소로 마련한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씀씀이만 줄여서는 한계가 있고 결국은 세율을 건드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건정재정포럼#국민 복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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