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건설 제2의 붐… 현장을 가다]<3>대림산업, 사우디 서부 얀부 귀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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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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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단순시공사, 이젠 설계-조달 총괄 글로벌건설사로

60m 철탑 공사 한창 지난달 11일 대림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정유공장(EPC3) 현장에서 높이 60m의 철탑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 철탑들은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을 촉매 반응을 통해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대림산업 제공
60m 철탑 공사 한창 지난달 11일 대림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정유공장(EPC3) 현장에서 높이 60m의 철탑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 철탑들은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을 촉매 반응을 통해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대림산업 제공
정오를 지나자 온도계는 40도를 훌쩍 넘었다. 홍해의 바닷바람과 사막의 모래바람은 서로 부딪쳐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이런 바람도 사우디아라비아 서쪽 해안도시 얀부의 폭염을 식혀주지 못했다.

지난달 11일 대림산업의 얀부 정유공장(EPC3)에 들어서니 철탑 곳곳에 매달린 근로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3000여 명의 일꾼들이 온통 철구조물로 뒤덮인 곳에서 바삐 움직였다. 계란이 바로 익는 쇳덩어리로 인해 손에 화상을 입지는 않을까.

현장 책임자인 임헌재 상무는 땀조차 흘리지 않았다. 큰 키에 100kg의 덩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과 묘하게 어울렸다. 그의 첫 마디는 ‘화려한 귀환’이었다.

임 상무는 “1980년대 단순 시공을 맡았던 대림산업이 약 30년 만에 설계·조달·시공(EPC)을 모두 맡아 서부(사우디)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꼬박 18시간. 먼 여정의 끝에서 한국 해외건설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그곳에선 한국 산업화의 ‘종자돈’이었던 서부 사우디 지역 공사가 30년이나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30년 만에 찾은 얀부

대림산업 얀부 정유공장 건설현장에서 직원들이 안전모와 선글라스를 쓴 채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이곳은 바다와 사막이 맞닿은 곳이어서 땅 위에서는 모래바람이 불고 작업장 아래에선 바닷물이 샘솟는다. 대림산업은 홍해로 물을 퍼내는 자체 아이디어로 열악한 작업환경을 극복했다. 대림산업 제공
대림산업 얀부 정유공장 건설현장에서 직원들이 안전모와 선글라스를 쓴 채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이곳은 바다와 사막이 맞닿은 곳이어서 땅 위에서는 모래바람이 불고 작업장 아래에선 바닷물이 샘솟는다. 대림산업은 홍해로 물을 퍼내는 자체 아이디어로 열악한 작업환경을 극복했다. 대림산업 제공
대림산업 얀부 EPC3 건설현장은 나프타를 운송할 파이프라인 공사로 분주했다. 근로자들은 석유를 정제할 60m 높이의 철탑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9월 현재 전체 공정은 66%로 2014년 5월 완공 예정이다.

대림산업은 2010년 사우디 석유기업인 아람코와 중국 석유기업 시노펙이 공동 발주한 EPC3 공사를 따냈다. 수주액은 10억6000만 달러(약 1조1766억 원)로 완공하면 하루 25만 배럴의 정제유를 생산할 수 있다. 대림산업의 사우디에서 수주한 공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얀부는 사우디 동부의 주베일과 더불어 한국 건설사들의 ‘1차 중동 진출’ 당시 주요한 사업지였다. 대림산업은 1970년대 중반 사우디가 얀부에 산업공단을 만들 때 미국 회사의 시공사로 참여했다. 1984년까지 총 10건의 공사를 진행했지만 이후 2010년 EPC3 공사를 따낼 때까지 서부 사우디 공사는 끊겼다. 임 상무는 “한때 수만 명의 한국 근로자가 일했던 ‘얀부’가 한국 건설업계에서 이름조차 잊혀질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건설사가 얀부 등 사우디를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단가’였다. 현장 작업자를 보내는 1980년대 방식은 인건비가 오른 1990년대 한국 건설사들에 효율적이지 못했다.

현장 소장인 김재홍 부장은 “한국 건설사들은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체 설계와 기술로 국제무대에서 설계, 구매, 시공을 한꺼번에 맡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다”며 “그때부터 중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발전은 1970년대 중동 붐을 몸으로 겪었던 선배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1979년 대림산업 직원으로 얀부에서 근무한 최무대 씨(70)는 “당시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수주한 현장에서 우리는 기술을 배우기 바빴다”며 “한국에 대형 크레인 운전기사가 없어 미국 기술자가 퇴근한 밤에 한국 직원들이 몰래 운전을 연습했다”고 전했다.

현재 대림산업이 이곳 현장에 보낸 한국 인력은 설계, 조달 부문 55명. 현장 근로자가 3000여 명인 걸 감안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임 상무는 “30년 전 우리와 같은 수준의 해외 시공업체들이 지금은 우리 하청을 받고 있다”며 “파견 인원은 적지만 한국에서 설계하고 한국 철강을 사다 쓰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매우 커졌다”고 말했다.

○ 같지만 다른 사우디 30년

30년 만에 들어간 얀부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을까. 한국 건설의 ‘돌파력’은 여전했고 직원들의 ‘처우’는 바뀌었다.

얀부 EPC3 공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파는 곳마다 샘솟는 물이었다. 얀부는 홍해와 접한 사막지대다. 육지에서는 황량한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땅을 파면 해수(海水)가 흘러넘쳤다. 발주처인 아람코에서 받은 기초 자료에는 이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이럴 땐 발주처와 다툼이 생길 수 있지만 대림산업은 스스로 해결했다.

김 부장은 “길이 3km 정도의 고무호스를 구해 물이 고일 때마다 모조리 홍해 바다로 다시 빼냈다”고 말했다. 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발주처인 아람코가 얀부 정유단지 4개 공사 중 2곳을 대림산업에 맡긴 것도 1980년대부터 쌓인 한국 기업의 돌파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복지는 몰라보게 개선됐다. 30년 전 얀부에 처음 진출할 당시 대림산업 근로자들은 원청업체인 미국 회사의 대형 바지선 위에 100여 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생활했다. 지금은 건물 한 동을 빌려 1인 1실을 쓰고 있다. 1980년대에는 1년에 한 번 1개월짜리 휴가를 얻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3개월 반을 일하면 2주 휴가를 얻는다.

얀부=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해외건설#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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