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분 美영화 대체 뭐길래…리비아 美대사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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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권 시위 격화… 駐리비아 대사 포함 4명 사망

리비아에서 사망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는 2007년 미국과 리비아가 외교관계를 재개할 때 리비아에 파견된 외교관 중 한 명이었다. 캘리포니아 태생의 스티븐스 대사는 1991년 외교부에 들어가 2007∼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리비아에서 근무했고, 올해 5월 리비아 대사에 임명돼 트리폴리에 부임했다.

미국 대사가 업무 중에 사고로 사망한 경우는 지금까지 모두 6건으로 이 중 4건이 테러, 2건이 비행기 사고에 의해서였다. 가장 근래에 발생한 것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사건으로 테러범에게 납치된 대사는 구출 과정에서 사망했다.

스티븐스 대사와 함께 사망한 사람 중 한 명은 신 스미스 씨로 미국 국무부 해외정보관리 분야에서 10년간 근무한 전문가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벵가지에서 트리폴리로 운구될 예정이다.

리비아 영사관 공격은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수니파 이슬람 단체인 안사르 알샤리아가 감행한 것으로 리비아 당국은 추정한다.

사건의 발단은 유대계 미국인 부동산 개발업자인 샘 배슬 씨(52)가 만든 ‘무슬림의 순진함(Innocence of Muslims)’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그는 유대인 100명으로부터 500만 달러(약 60억 원)를 후원받아 지난해 3개월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배우 60명 및 스태프 45명과 2시간짜리 영화를 찍었다.

[채널A 영상]
죽음 부른 문제의 영화


문제는 영화 내용.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나이 어린 여러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등 여색을 밝히는 캐릭터로 묘사하는 한편 당나귀를 ‘최초의 무슬림 동물’로 부르는 등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영화의 14분짜리 영어 버전 압축본이 7월 유튜브에 올라왔으나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아랍어로 더빙된 버전이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조회수가 4만 건을 넘는다.

이 영화의 유포에는 지난해 3월과 올해 4월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불태워 물의를 일으킨 미국인 테리 존스 목사도 관련돼 있다. 그는 “영화는 무슬림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이 무함마드의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교회에서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반이슬람으로 유명한 콥트교도인 모리스 사데크도 “이 영화가 이집트에서 콥트교도들이 무슬림에게서 어떻게 억압받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배포에 앞장서고 있다.

아랍권은 격노했다. 중량급 인사인 아랍연맹의 아흐메드 벤 헬리 사무차장도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비난했다. 아랍권 언론은 영화 관련 뉴스를 내보내고, 이슬람 성직자들은 연일 영화를 비난했다. 특히 이집트의 급진 이슬람 성직자들은 “9월 11일에 미국대사관을 공격하자”고 페이스북에서 선동했다.

이런 여파로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동시에 미국 공관을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에서는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영사관을 직접 공격한 점이 충격적이다. 리비아 최고치안위원회(SSC)의 압둘 모넴 알 후르 대변인은 “벵가지 미국 영사관 바깥에서 리비아군과 무장시위대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며 “영사관 건물 바깥을 치안 병력이 둘러쌌으며 도로가 폐쇄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무장 시위대가 진입을 시도하며 공격하자 건물 안에 있던 영사관 경비 병력도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며 “인근 농장에서는 영사관을 향해 수류탄도 발사됐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부총리인 무스타파 아부 아부 샤그루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 스티븐스 대사와 다른 외교관들을 숨지게 한 영사관 공격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11일 오전부터 미국대사관 주변으로 시위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한때 3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대부분은 이슬람 원리주의 그룹인 ‘살라피스트’들이라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현장에는 살라피스트의 상징인 턱수염을 기른 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시위 구호 가운데는 “우리 모두는 오사마(오사마 빈라덴)”라는 구호도 나왔다.

이슬람 강경주의자인 살라피스트들이 이번 시위를 사실상 계획했다고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이 전했다. 시위 당일 이집트의 살라피스트 지도자인 웨삼 압델 와레트는 “미국 영화가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며 “미국대사관에 집결해 시위를 벌이자”고 촉구했다. 이집트 수니파 계열인 살라피스트는 세속주의를 표방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정권 시절 숨죽이고 지내오다가 지난해 반무바라크 민주화 시위가 발발하자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날 시위대 중 20여 명이 대사관 벽을 타고 넘어 들어가 미국 성조기를 끌어내리고는 이로 물어뜯거나 찢은 뒤 불태웠다.

윤양섭 선임기자 lailai@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리비아#아랍권 시위#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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