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다 숨 넘어갈 ‘112’… 10번중 3번은 통화중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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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다 숨 넘어갈 ‘112’… 10번중 3번은 통화중
■ 서울경찰청 112신고 대기전화 현황 분석해보니

‘왜 긴급전화인 112가 통화 중일까.’

112에 전화하면 평균 10통 중 3통이 ‘통화 중’ 상태여서 연결되기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이나 성폭행 위험에 놓인 피해자가 생명을 위협받으며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될 확률이 30%나 되는 것이다.

실제로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일어난 흉기난동사건 때 현장에 있던 김모 씨가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112에 전화했지만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대기하라”는 자동응답시스템(ARS) 음성만 반복된 것이다. 김 씨는 할 수 없이 전화를 끊고 허리띠를 풀어 범인과 맞서야 했다.

○ 신고자 14%, 통화 안 돼 신고 포기

동아일보가 29일 입수한 서울지방경찰청 112 신고전화 대기 현황을 보면 지난달 하루 평균 걸려온 112 전화 2만1429건 중 통화 대기된 건은 6306건이었다. 신고자의 29.4%는 112가 ‘통화 중’인 탓에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1∼6월에도 30∼32%가 전화 연결을 기다려야 했다.

서울경찰청 112센터의 경우 18∼23명의 근무자가 모두 신고를 받고 있으면 그 후 걸려온 전화는 계속 대기하다 접수원 중 한 명이 전화를 끊어야 연결된다. 112 연결이 안 되는 상황은 범죄가 빈발하는 오후 10시∼오전 3시에 가장 심했다. 범죄가 적은 오전시간대에 비해 신고대기 건수가 3∼6배 많았다. 금요일과 토요일의 통화대기 건수도 일요일과 월요일보다 각각 2배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때 112 신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따른 징계가 내려진 뒤 한 건이라도 제대로 신고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다른 신고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자의 절반은 통화도 못해 보고 전화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에 들어온 112 신고전화 857만 건 중 통화대기 상태에서 끊긴 전화는 119만 건으로 14%에 달했다. 10명 중 3명은 ‘통화 중’에 걸리고 그중 절반(14%)이 신고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화가 도중에 끊기면 경찰 내부전산망에 번호가 남지만 당장 들어오는 신고를 받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라 끊긴 번호로 다시 연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911로 걸려온 전화가 접수원이 받기 전에 끊기면 해당 번호의 발신지를 추적해 무조건 경찰이 출동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초가 중요한 긴급 상황 때 이용되는 112가 통화 중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신고가 빨리 접수돼야 피해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범인도 수월하게 검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고 대기 건수를 줄이려면 신고 접수가 부실해지는 게 문제다. 112센터 관리자가 대기전화 현황을 파악해 직원에게 신속한 처리를 독촉하면 서둘러 전화를 끊느라 출동한 경찰관에게 충분한 현장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6월 경기 수원시에서 동거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던 여성이 몰래 112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 남성에게 전화로 폭행 사실을 물은 뒤 되돌아가 피해를 키운 사건도 그런 사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피해 여성은 거의 감금상태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폭행을 당하고 있었는데 해당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서두르느라 피해자의 부상 정도나 폭행 내용을 자세히 명시하지 않아 출동한 경찰관이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112 두 번이나 신고했지만… 받지 않아?

○ 인력 증원하고 접수방식 개선해야

경찰은 ‘통화 중 증상’을 해결하려면 전국적으로 112 접수 및 지령요원을 1500명가량 증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112 직원 1인당 하루 평균 접수처리 건수는 61.5건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32건), 일본 도쿄(30건) 등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거짓 오인신고와 긴급하지 않은 민원전화도 많아 불필요한 일에 인력이 분산되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인력을 늘리기보다 신고가 집중되는 시간대에 근무요원을 늘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업무로 배치하는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수요와 공급이 맞도록 112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현 연세대 경영대 교수(한국생산관리학회 회장)는 “비긴급 전화는 추후 다시 연락하거나 다른 곳에 연결하고 거짓전화를 신속히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춰 업무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며 “다만 112는 국민 생명이 달린 공공 서비스인 만큼 지나치게 효율성에 집착하기보다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112#통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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