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는 편지’들이 경기 파주시 통일로추모공원 복도에 자리 잡은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젠 정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구나. 그냥 보고 싶다는 말밖에. 보고 싶다”라고 적힌 메모지를 시작으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그리움을 담은 글이 몇 개나 이어져 있었다. 파주=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봉안당(납골당)에는 유족들이 남긴 수첩과 쪽지, 편지 등이 봉안함과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봉안당의 규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이었습니다. ‘O₂’가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계신 분들과 그 가족들이 나눴던 삶과 사후에 이뤄진 ‘대화’의 조각을 모아봤습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 “끝이지, 끝. 죽으면 끝이야.”
길게 이어지던 봄날 오후의 정적이 깨지고 봉안당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중년 여성 한 명과 또래로 보이는 또 다른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춘 그들은 봉안함 하나를 바라봤다. 봉안함 앞에 붙어 있는 사진 속에는 청년이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태우려고 보니까 옷이 엄청 많더라며? 지가 무슨 연예인이여, 장가나 가지.” 툭툭 던지는 말이지만 안타까운 감정이 듬뿍 묻어났다. 상복을 입은 여성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5분 뒤 또 한 명의 방문객이 들어왔다. 손수건을 손에 꼭 쥔 중년 여성 한 명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또 다른 봉안함 앞에 가 멈췄다. 좀처럼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그녀는 “흐흑” 억눌린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22일 충북 청주시의 한 봉안당.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묻은 채 소중했던 사람들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끝나지 않는 것은 발길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말들이 끝도 없이 켜켜이 쌓여간다. ○ 엄마의 영원한 애인
먼저 떠나간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을 건넨다.
“눈을 뜨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나무에게, 하늘에게, 별들에게 말을 한단다. 오늘도 잘 잤느냐고…. 그리고 엄마도 잘 지낼 것이라고…. 늘 엄마 걱정 해주었던 아들에게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별들을 친구 삼아 잘 지내라고…. 아플 곳도 없을 테고, 앞도 잘 보일 테고 말이야. 아들은 엄마의 영원한 애인이란다. 아들을 사랑한단다. 영원히….”
봉안함 구석의 작은 벽걸이에 손바닥만 한 수첩이 볼펜과 함께 걸려 있다. 그것을 통해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들이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2009년의 어느 날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어머니의 대화는 계속됐다.
“××× 친구 알지. 아들 소식 듣고 집에 다녀갔어. 우리 아들 대신 ××를 아들 삼아 저녁을 먹이고 보내기는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한 느낌이 들더라고. 이사를 해서 우리 아들도 밥 한 끼 못해주었는데….”
“오늘이 설 명절이래. 다들 모여 있는데 우리 아들만 안 보여. 며칠 전 꿈속에서 보았지. 엄마를 못 찾겠다고 하면서. 엄마가 너의 얼굴을 매만지며 한참을 울었어.”
“이곳에 너를 두고 가니 춥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고. 여러 분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을 테고.”
수첩은 3분의 2 정도가 채워져 있었다. 수첩 사이사이 아버지도 아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네 방에 가서 바지 입으며 네 사진을 본단다. 마음속으로 빌고 기도하면서. 잘 지내고 있니?” “누가 다녀갔는지 예쁜 꽃이 있구나. 엄마, 아빠 말고도 우리 아들 기억해주는 이 있어 너무 행복하구나. 감사하고.”
그리고 약속한다. “엄마 아빠도 한날한시에 너에게 달려갈 거야. (중략) 언젠가 저승에서 우리 모두 만나 가족을 이루고 다시 모여 사는 날까지 안녕.”
또 한 명의 어머니도 먼저 간 아들에게 속삭인다.
“만남보다 빨리 오는 이별 앞에 눈물겨워 어쩔 줄 몰라도 ××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구나. 너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 애틋하게 물드는구나.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안타까운 마음은 너를 잊지 못하는구나. 울컥 치미는 그리움. ××야. 고통과 상처 모두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행복하거라.”
품을 떠나버린 딸이 그리운 아버지는 짧은 글을 남긴다.
“내 딸 ××아. 봄은 왔는데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버지가 왔다 간다. 2010년 2월 29일 오전 10시.”
○ 내 마지막 효도
이번에는 딸이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사랑하는 엄마. 나 엄마가 그토록 믿던 딸 ××야. 엄마 살아있을 때 믿게끔 못해준 거 미안해. 그때 못한 거 이제야 하게 된 것도 미안해. 그래도 우리 엄마 살아계실 때 생일이라고 패밀리레스토랑이라도 데리고 가서 외식시켜 준 거라도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평생 엄마 파티 한 번도 제대로 해준 적 없었으니까…. 해드릴 게 아직도 많은데 왜 벌써 갔어…. 엄마 보고 싶다…. 이제 엄마 볼 순 없지만 항상 우리 지켜보는 거 아니깐 울지 않을 거야. 내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정말 씩씩하게 열심히 살게. 걱정하지 마! 사랑해.”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찾은 또 한 명의 딸도 메모지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았다.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도 하늘나라의 어머니가 볼 수 있도록 그 옆에 붙여놓는다.
“어버이날에 이렇게 찾아오니까 내 마음이 너무 좋다. 오늘 내내 엄마 생각도 하고. 나 고등학교 입학하는 거 보고 싶어 했는데, 벌써 대학생이 됐네. 엄마가 내게 주고 간 삶을 아주 소중히, 감사히 여기며 난 잘 지내고 있어. 엄마 늘 너무 고맙고 사랑해!”
시들지 않는 붉은 카네이션과 함께 며느리도 시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랑하는 어머님께. 벌써 어버이날이 다섯 번째가 되었네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올 때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나네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래요…. 내일 아버님 모시고 여행 가요. 어머니와도 함께 가야 했었는데…. 애 아빠도, 아버지도 아쉬움이 많으실 거예요. 천국에서 만나면 매일매일 여행 같이 다녀요…. 안전하게 잘 다녀오도록 지켜봐주시고요. 다녀와서 다시 들를게요….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
어버이날의 흔적은 봉안당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어린아이의 솜씨가 분명해 보이는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부터 직접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글자를 써내려간 리본이 양 갈래로 늘어진 카네이션까지…. 늘 그렇듯 그 자리에는 후회하는 마음도 함께 떠돌고 있었다.
“할머니. 이렇게 글로 남기기는 참 오랜만이네. 그곳에선 가슴에 꽃 다셨나? 누가 달아준다고? 그치? 그곳에선 행복하시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셔야 해! 생전에 꽃 많이 못 달아드려 죄송해요. 그땐 몰랐는데….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할머니, ××이가 많이 사랑해요.”
○ 귀여운 재잘거림
안치단 옆으로 과자 상자와 군번줄이 놓여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메모지에 마음을 담아 고인에게 말을 건다. 파주=김미옥 기자 salt@donga.com입대 ‘신고’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은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아들의 목소리도 그 속에 함께 섞여 들려온다.
“필승! 엄마, 저 군대 가요. 그간 멀다는 핑계로 자주 오지 않았네요. 아 참! 아버지가 많이 힘드신가 봐요. 티 안내셔도 얼굴에 쓰여 있네요. 힘들지 않게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저 군생활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훈련 멋지게 이겨내고 잘해서 늠름해진 모습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오늘은 ××가 드디어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가끔 말썽도 부리더니 어찌해서 졸업은 무사히 하네요. 오늘 문득 ××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와 함께 셋이서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나서 울컥 했습니다. 지금 비록 곁에는 안 계시지만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실 거라 믿어요. 아 참. 그리고 제가 드디어 생애 첫 애인이 생겼어요. 착하고 예뻐서 엄마, 외할머니, 삼촌 모두 마음에 들어 해요. 조만간 데려와서 인사시키겠습니다. 언제나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처음으로 애인이 생겼다고 자랑하는 아들의 글 앞 장에 그가 써 놓은 또 다른 글 한 토막이 눈에 들어왔다. “P.S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며느릿감을 찾아 데려오겠습니다.” 채 두 달도 안 돼 아들은 아버지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가 챙겨 온 카네이션 한 송이는 생기를 잃었지만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어린 딸과 손녀의 귀여운 재잘거림도 이어졌다.
“오늘 수학시험 100점 맞았다. 원래는 20문제 중에서 19개 맞았어. 근데 왜 100점인 줄 알아? 그 한 문제는 선생님이 풀지 말랬어. 인쇄가 제대로 안 돼서 풀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19개 맞은 애들은 다 100점 맞은 거야.”
“사랑하고 존경하는 할아버지께. (중략) 추신-저 곧 ‘구피’ 물고기 키울 거예요. 친구가 새끼 낳아서 몇 마리 준댔거든요. 벌써부터 설레요!”
○ 인생은 미완성
짝을 잃은 사람들이 남몰래 터뜨리는 울음소리도 귓가를 울렸다.
“이제 49일이 지났으니 조금은 울어도 되겠지? 아쉬움도 많겠지만 되돌아보면 누구나 똑같은 것 같아. 맘 편하다고 했으니까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 일만 하지 말고 이젠 자신을 아끼며 즐기면서 자신을 사랑해 봐. 목표는 다 이루지 못했지만 人生은 미완성이잖아. 나도 마음은 편해. 아직 가슴이 뭉쳐 풀지 못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으로 당신 몫까지 해주는 것 아닐까?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이제 알겠어. 사는 동안은 싸우며 그렇게 보냈지만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그게 사랑 아닐까? (중략) 어떤 상황이 닥쳐도 초연한 모습으로 당신 곁에 가는 날까지 남은 숙제를 이젠 내가 다 하고 떠나갈게.(후략)”
“×× 와따 ♥ 서방. ×× 혼자 정동진 왔다. 기특하지! 너랑 같이 왔던 기억 더듬어가며 어리바리 넋 놓고 있다가 길 잃을까 봐 집중하며 찾아왔지롱. ^^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근데 이상하게 두렵지가 않아.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에 빠질 때는 네가 이 상황에서 나한테 뭐라고 말했을까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개운해져. (중략) ‘이 놈의 ×× 시키. 서방 없다고 그렇게 어리바리 할래?’ 네가 해준 말 중에서 ××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야. 서방, ××가 서방 많이 사랑해. 알지?”
혼자 정동진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올해 첫날에도 그를 찾았다. 끝나지 않은 사랑을 담아 그녀는 또 말한다. “오늘은 우리가 2004년부터 9년째 연애 중인 날이야. 꽉 채운 9년.” 손바닥보다도 작은 수첩에는 그녀의 고백이 쉼 없이 쌓여 있다. “2010년을 생각하면 살 수가 없어서 우리가 행복했던 시간만 생각하려고 해. 아팠던 너를 지워서 미안해.” “너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나란 것에….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언니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난 형부에 대한 투정도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 다시 태어나도 가족으로 만나요. 그땐 내가 형부의 동생으로 태어나서 말썽 좀 피워드릴게요. 처제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가벼운 정장 차림의 남성이 양초 하나와 음료수 캔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초에 불을 붙인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기자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봉안당 밖으로 걸어 나왔다. 뜨거운 오후 햇살에 눈살이 절로 찡그려졌다. 가방 안에서 물 한 병을 꺼내 마셨다. 미지근한 물맛이 평소와 다르다.
‘삶의 단편들을 보고 흐느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비극작가였던 세네카가 아들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마르키아에게 보냈던 위로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흐느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일까.
한 손에 꽃다발을 든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봉안당 쪽으로 걸어왔다. 소녀의 얼굴에 걸린 희미한 미소에 또 다른 소녀가 남긴 메시지가 겹쳐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빠. 안녕하세요? 제가 아빠를 잘 못 기억하였나 봐요. 아빠 이름도 까먹고. 참 어이가 없죠?”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엄마, 그곳의 하루는 여기의 백 년과 같대. 하룻밤만 지내면 우리 다시 만날 거야.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분들도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가 유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갖게 해주신 충북 청주시에 사시는 익명의 독자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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