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유통업계 블랙컨슈머 “주스, 벽지에 튀었다…도배비용 200만원 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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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유통업계 블랙컨슈머 백태

아버지뻘 택시운전사에게 길을 모른다며 폭언을 퍼붓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찍힌 이른바 ‘택시 막말녀’ 동영상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유통·식품업계에서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곧바로 매출이 감소하고, 심한 경우에는 회사가 문을 닫기도 하는 우리 업종의 약점을 이용해 막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금품까지 뜯어내는 블랙컨슈머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 “블랙컨슈머는 PB 제품을 좋아해”

14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요즘 블랙컨슈머들이 가장 빈번하게 트집을 잡는 상품은 대형마트의 자사브랜드(PB) 제품이다. PB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판매하는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제조업체까지도 매출이나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A마트는 한 고객으로부터 “PB 제품 토마토주스 때문에 벽지가 더러워졌다”며 도배 비용으로 200만 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한여름에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유통기한이 지난 주스가 썩자 이를 버리려고 뚜껑을 열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용물이 바깥으로 튀며 집안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A마트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라는 점을 들어 보상이 어렵다고 하자 이 고객은 “그런 식으로 나오면 ‘유통기한이 지난 주스를 팔고도 피해보상은 물론이고 환불도 거부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또 A마트가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자 “PB 제품이라 피해가 클 테니 웬만하면 합의를 보자”고 회유까지 했다.

○ “‘메이드 인 차이나’인 줄 몰랐다”


유통업체들이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며 별다른 조건 없이 100% 환불제도를 운영하는 점을 노린 블랙컨슈머도 적지 않다. B마트에는 매달 한두 차례 찾아와 제품 환불을 요구하는 여성 고객이 있다. 이 고객은 늘 “‘메이드 인 차이나’인 줄 모르고 샀다”고 주장하는데 환불을 요구한 제품 중에는 이미 여러 차례 입어 닳은 속옷도 있었다고 B마트 측은 귀띔했다.

홈쇼핑이나 오픈마켓에는 제품 한 개를 사면 덤으로 한 개를 끼워주는 ‘1+1’ 행사 상품만 노리는 블랙컨슈머도 있다. 이들은 택배기사가 구입한 상품을 배달하러 오면 집이 비었다며 경비실에 맡겨두라고 요구한 뒤 판매처에 전화를 걸어 “‘1+1’이라더니 제품이 하나밖에 안 왔다”고 우겨 제품 한 개를 추가로 받아낸다. 이후 제품이 마음에 안 든다며 두 개를 반납하며 환불을 요구하고 추가로 받은 제품 한 개는 챙기는 것이 이들의 수법이다.

여러 업체를 전전하며 협박을 일삼는 ‘생계형’ 블랙컨슈머도 적지 않다. 한 베이커리 업체 고객 민원처리 담당자는 ‘빵에서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언론에 알리겠다’는 사람을 만나 이물질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실험을 통해 확인시켜 줬다. 그러자 문제의 고객은 자신의 통장에 찍힌 다른 업체의 입금기록을 보여주며 “5만, 6만 원이면 될 일을 왜 어렵게 만들려고 하느냐”며 요구 금액을 낮췄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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