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4> 베트남에 ‘굿 코리아’ 알리는 대한생명

동아일보 입력 2012-01-16 03:00수정 2012-07-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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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밑에 깔린 ‘배드 코리아’ 감정… 대한생명 만나면서 달라졌다”
13일 베트남 호찌민 아동병원에서 만난 푹록 군(왼쪽)과 응우옌호앙비 군은 신장병동에서 소문난 장난꾸러기들이다. 입원실 침대를 차지할 돈이 없어 복도에 돗자리를 펴고 지내는 이들은 대한생명 직원들이 준 세뱃돈을 받아들고 “설 기분이 난다”며 활짝 웃었다.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제공
12일 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찌민 시내에 있는 시각장애인 학교 ‘응우옌딘찌에우’.

학생들과 교사들이 한껏 멋을 냈다. 교사들은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었고 학생들은 머리와 교복에 갖가지 장식을 했다. 이날은 다가오는 설날(뗏)을 맞아 약 3주간 쉬는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다. 학예회도 함께 열린다. 합창이 끝나자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연극이 시작됐다.

무대 위 종이왕관을 쓰고, 흰 수염을 붙인 왕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가 올린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왕은 조상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설음식을 가져오는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하겠다고 했다.

“이걸 한번 먹어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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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종이왕관을 쓴 셋째 왕자가 녹색 바나나 잎으로 싼 사각형 모양의 ‘반쯩’을 내밀었다.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인 쌀과 돼지고기로 만든 떡이었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셋째 왕자도 웃으며 일어섰지만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무대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얼른 뛰어가 자세를 잡아줬다.

“이때부터 베트남 설에는 반쯩을 먹기 시작했답니다.” 또 다른 학생이 눈을 감은 채 내레이션을 마치자 학생들과 선생님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때 주황색 조끼를 입은 어른들이 나타났다. 아이들의 환호성은 커졌고 무대에 오른 어른들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거렸다. 조끼에는 ‘코리아 라이프 인슈어런스(Korea Life Insurance)’라고 쓰여 있었다.

[채널A 영상]]“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거위의 꿈 부르는 케냐 어린이들

○ 배드 코리아? 굿 코리아!


12일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직원들은 시각장애학교 응우옌딘찌에우를 찾아 멋진 설맞이 연극을 펼친 학생들에게 USB 메모리 등의 선물을 전했다. 뒤에 걸린 플래카드의 ‘MUNG DANG MUNG XUAN’ 은 ‘새봄맞이 대축제’라는 뜻이다. 호찌민=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코리아 라이프는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의 이름이다.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이종호 팀장과 염경선 팀장이 연극에 출연한 학생들에게 축하 선물을 하나씩 전했다. 둘째 왕자 역할을 맡은 응우옌딘언 군(17)은 쇼핑백을 흔들며 내용물을 가늠해 봤다.

선물은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메모리와 컴퓨터에 연결해 쓸 수 있는 스피커였다. 선물 아이템은 대한생명 측이 사전에 교사들에게 물어서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정했다. 베트남 전통악기 5개를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많다는 언 군은 “나같이 앞이 안 보이는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라며 “강의를 많이 듣고 복습하려면 USB메모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많이 좋아하는데, 한국 기업이 공부를 도와주는 선물을 줘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한류(韓流)를 접한 아이들과 달리 교사인 응우옌티옥한 씨(여)는 원래 한국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초등부를 가르치는 한 씨는 17년 경력의 베테랑 교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베트남에 있는 한국 공장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고, 직원들을 때린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런데 ‘코리아 라이프’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라 기업들은 대개 일반 학교를 찾아가는데, 한국 기업만 우리 시각장애인 학교를 찾았다. 가난한 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지원해줘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대한생명의 현지 이름은 ‘코리아’라서 회사와 한국의 이미지가 바로 연결된다.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 덕을 보지 않느냐고 묻자 현지 직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에는 현지 한국 공장에 대해 나쁜 소문이 많았고, 최근에는 한국으로 시집간 베트남 신부들의 비극적인 사연이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생명은 2009년 영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린이 병원과 학교를 중심으로 시설을 고쳐주고, 봉사활동을 하며 지역사회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 베트남 아이들 속으로


13일 호찌민 아동병원 신장병동 복도에서 응우옌호앙비 군을 만났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열세 살이라고 했다. 겉보기에는 일곱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신장이 좋지 않아 영양이 골고루 퍼지지 못해 성장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팔에 혈액 투석 흔적이 없었다면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비 군은 불끈불끈 부풀어 오른 혈관을 만져보라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비 군은 5년째 병원 복도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베트남에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정부 병원 중 하나지만 침대를 차지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투석은 계속 해야 하는데 집은 차를 타고 7시간 거리인 긴지앙에 있다. 비 군 같은 아이 15명이 엄마와 함께 돗자리에 누워 있었다.

“비 군 때문에 설 명절 전에 우리끼리 도와보자며 사내 e메일을 보냈어요.”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의 타이탕 마케팅 매니저가 말했다. 대한생명은 이 병원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벤치를 놓아주는 등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왔다. 회사 사회공헌활동 차원이었다. 타이 씨는 “재작년에도 본 비가 올해도 병원에 있는 걸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며 “베트남 최대 명절인 설인데 고향에도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작은 정성을 모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달 초 타이 씨가 e메일을 보내자 법인의 젊은 직원 20여 명이 ‘나도 참여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150만 동(약 82만 원)이 모였다. 퇴근 후에 전달하려고 했는데 ‘일’이 커졌다. 사연을 알게 된 현 법인장이 회사에서 150만 동을 더하고, 과자와 티셔츠, 장난감을 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병원 측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명단을 전해줬다. 직원들은 빨간색 세뱃돈 봉투에 아이들 이름을 적어 하나씩 전달했다. 주황색 봉투에는 티셔츠와 과자 등을 넣었다. 딸이 암 수술을 받아야 해서 5시간을 달려 호찌민에 왔다는 한 여성은 “고향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과자”라며 “설날에 재밌는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비 군의 단짝친구인 푹록 군(15)도 세뱃돈 명단에 자기 이름은 없느냐며 뛰어왔다. 록 군은 “코리아 라이프 아저씨들을 자주 봤다”며 “이 아저씨들은 ‘한꿕(베트남어로 한국은 한꿕)’ 사람들이고 아저씨들이 우리 병원에 오는 캠페인 이름은 ‘데이 오브 러브(사랑의 날)’다”라고 말했다. 4년째 병원에 있다는 록 군은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현지 직원들이 병동을 나올 때까지 졸졸 쫓아왔다.

준비한 선물을 모두 돌린 후 타이 씨는 함께 온 직원 10여 명에게 “(회사 이름이 적힌) 조끼를 벗자”고 외쳤다. 회사 차원이 아닌 순수한 개인 차원에서 주고 싶어 곰돌이 인형 등을 따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서 세뱃돈을 나눠주다 명단에 없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이미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도 했다. 직원들이 조끼를 벗고 사복 차림으로 곰 인형을 챙기러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종호 팀장은 “회사 홍보로 시작했던 사회공헌활동이 직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지인 승진기회 보장… ‘외국기업’ 편견 사라져 ▼

13일 동료들과 함께 호찌민 아동병원을 찾은 뚜타이썬 대한생명 베트남법인 마케팅팀 디자이너가 활짝 웃고 있다.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제공
“우리는 베트남 현지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 직원 160명 중 한국인은 단 3명뿐이다. 현정섭 법인장과 마케팅·영업을 총괄하는 이종호 팀장, 기획총괄 염경선 팀장이다. 나머지 인사, 마케팅, 영업, 전산 부문 간부 및 직원들은 모두 베트남 현지인이다.

현 법인장은 “제조업체들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팔기 때문에 제품을 잘 만들면 그만이지만 보험업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팔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선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계 회사들은 본국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만 요직에 앉힌다는 나쁜 평판이 있었다. 대한생명은 실천을 통해 이런 선입견을 과감히 깼다. 베트남인의 자부심을 인정해주고 승진 기회를 줬다. ‘한국 기업은 직원들을 막 대한다’는 베트남 사회의 편견은 공정한 인사 앞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염 팀장은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에 대해, 최종적으론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자부심이 크다”며 “역사가 길고 유교 문화권이라 교육열도 높다”고 말했다. 대학을 나온 자부심 강한 베트남인을 파트너로 대하느냐, ‘후진국 국민’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분위기와 성과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오랜 전쟁으로 현재 베트남에는 20, 30대 젊은층이 두꺼운데, 이들은 성취욕이 큰 편이다. 현 법인장은 “대한생명 법인에도 직원 상당수가 30대”라며 “대한생명을 현지 기업처럼 키우기 위해 직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회사에서 추진하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한생명 베트남 법인은 지난해 헌혈 봉사 행사를 기획했다. 베트남에서는 피를 뽑는 행위가 불행을 가져온다는 속설이 있지만 상당수가 행사에 참여했다.

코리아 라이프와 동화된 직원들은 인터넷을 통해 긍정적인 ‘코리아’의 이미지를 알리기도 한다. 아동병원 방문을 기획한 타이탕 마케팅 매니저는 페이스북에 ‘참여를 원하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고 올렸다. 곧바로 이름 모를 3명이 돈을 입금했고, 한 베트남 대학생은 함께 세뱃돈을 전달하러 행사에 오기도 했다.

호찌민에서는 BMW와 롤스로이스 사이로 낡은 오토바이 수백 대가 도로를 누빈다. 당장의 삶이 고단한데 누가 보험에 가입할까 싶지만 현지 직원들이 똘똘 뭉친 덕분에 대한생명은 프루덴셜, AIA 같은 글로벌 보험사의 틈새를 파고들어 3년 만에 약 2%의 시장을 차지했다.

호찌민=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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