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김정은 어리지만 후견 버팀목 든든… 北 급격 붕괴 없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김정일 전속요리사 지낸 후지모토 겐지 씨

“정은 대장동지가 어리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갑자기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장동지 주변에는 고모 김경희(당 경공업부장)와 고모부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 군부 실세 최룡해 대장(당 비서 겸 중앙군사위원) 등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1988∼2001년 1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하며 김정일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 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65·사진) 씨. 21일 동아일보 도쿄지사를 찾은 후지모토 씨는 “김정일 장군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후지모토 씨는 2003년 ‘김정일의 요리인’이란 책에서 베일에 가려져온 로열패밀리의 속살을 드러냈다. 그는 일찌감치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김정은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검정 선글라스에 두건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올해 65세지만 인터뷰 내내 김 위원장을 장군님, 김정은을 대장동지로 호칭하며 깍듯이 예를 갖췄다. 그는 “대장동지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당시 김정은의 인상을 회고했다.

“당시 7세이던 대장동지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에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어요. 옆에서 장군님이 ‘어이, 후지모토 씨야 인사드려야지’라는 말에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죠.” 그는 김정은의 저돌적이면서도 당찬 모습에 일찌감치 ‘간단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차남 김정철보다는 나서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적격이라고 여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년 동안 평양에 있으면서 장남인 정남 씨는 본 적이 없어요. 당과 군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호화로운 파티에는 늘 정철과 대장동지 두 형제뿐이었습니다. 장남은 일찌감치 후계자 후보에서 밀려난 있었던 셈이죠.”

후지모토 씨는 2000년 8월 원산초대소에서 있었던 김 위원장의 가족여행에 동행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정철에게 “후계자가 되고 싶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정철이 손사래를 치며 할 수 없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사실상 낙점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후지모토 씨는 그날 밤 평양으로 돌아오는 전용열차에서 김정은과 나눈 대화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밤 11시쯤, 대장동지가 갑자기 침실로 찾아왔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장난기가 넘쳐나던 17세 소년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무척 진지한 얼굴이었죠.” 후지모토 씨는 김정은과 함께 옆 객차로 옮겨가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은 그에게 “우리는 여름이면 제트스키도 타고 승마도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뭘 하면서 놀까? 나는 유럽이나 아시아 등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그 나라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이 넘쳐나는데 북조선은 뭐든지 턱없이 부족하잖아. 미국과 전쟁해서 패했는데도 일본이 그렇게 부활한 것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후지모토 씨는 김정은이 태어난 해가 1982년이 아니라 1983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날 대장동지가 띠를 물어 돼지띠라고 하자 본인과 같은 띠라며 무척 반가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후지모토 씨는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 권력 장악이 힘들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대장동지가 전면에 나서 북한을 지휘하기까지는 5∼10년이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는 본인의 의견이 10분의 1도 반영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 등 든든한 후견인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파티장에서 본 장성택의 파워는 바깥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며 “장 씨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확고한 넘버2”라고 했다.

후지모토 씨는 김 위원장 일가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느 나라든 최고지도자는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쓰기 마련”이라며 “북한은 정보가 차단돼 있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식사가 끝나면 바로 간장약 심장약 혈압약 등 5종류의 약을 한 움큼씩 복용했다”며 “장군님은 일찌감치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많은 병을 가지고 있어 마치 ‘질병 백화점’과 같았다”고 말했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그의 식습관으로 볼 때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것이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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