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1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남측 민간단체나 인사가 조의문을 보내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게만 조문 방북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조문 논란은 계속됐다.
○ 통일부 “정치인 조문은 안 돼”
최보선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팩스나 우편 등으로 조의문을 발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허용하겠다”며 “이를 위해서는 통일부에 대북 접촉 신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남한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통일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접촉 신청을 승인할 방침이지만 조의문 내용이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면 반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과 노무현재단,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이 조의문 전달을 위한 대북 접촉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날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정 전 회장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과 조문 방북에 대한 실무협상을 시작했다. 북측은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들의 방북은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첩보 수준의 정보에 따르면 (북측이)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조문단은 받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도 ‘예외적으로 남한 조문단은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여사를 모시고 조문단으로 방북하고 싶다. 나도 정부 측에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 여사가 한 달 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찾은 통일부 인사에게 “방북을 하게 되면 박 의원,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함께 갔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최 대변인은 “정치인은 유족이 아니고 실무진도 아니다”라며 박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 방북 불허 방침을 밝혔다.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실무를 총괄하는 김영현 현대아산 전무가 이날 통일부를 방문해 방북 시기와 규모를 협의했다. 현 회장과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등 5∼10명으로 조문단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 국회 차원 조문 놓고 여야 대표 설전
여야는 국회 차원의 조문단을 북한에 보내는 문제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는 이날 각각 지도부 취임 이후 처음 국회에서 만났다. 첫 번째 논의 안건도 조문단 파견 문제였다.
먼저 원 대표가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파견하지 않기로 했지만 국회 차원에서는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조문단을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운을 뗐다. 이에 박 비대위원장은 “남남갈등, 국론분열이 있어선 안 된다”며 “정부가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한 만큼 정부의 기본 방침과 다르게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원 대표는 “국회가 정부보다 반걸음 정도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며 박 비대위원장이 2002년 북한의 초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일을 거론했다. 그러자 박 비대위원장은 “2002년은 핵문제 등이 그렇게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반격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천안함, 연평도 도발로 숨진 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북한의 사과 없이 어떻게 조문을 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조문 방북을 허용할지도 논란거리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이 여사가 권 여사의 동행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너나 할 것 없는 무질서한 방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권 여사의 방북은 허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이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에는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권 여사의 방북은 불허하기로 했다. 또 노무현재단이 조문 방북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서도 불허 방침을 밝혔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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