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차도남’ 김남진 “순박한 오덕후로 2개월간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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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일 0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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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기 미키짱, 너는 내 운명
●'흔들리지마' 이후 3년 만에 연기자로 돌아와

연기자 김남진은 6일까지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하는 ‘키사라기 미키짱’에서 ‘수집벽’이 있는 이에모토를 연기한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연기자 김남진은 6일까지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하는 ‘키사라기 미키짱’에서 ‘수집벽’이 있는 이에모토를 연기한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키사라기 미키짱'. 7일 마지막 공연을 앞둔, 대학로에서 꽤 '핫'한 연극이다.

캐스팅 표를 보다 보면 김한, 이철민, 김원해 등 익숙한 얼굴도 있고, 박정민 처럼 새로운 얼굴도 있다. 그러다 "응?"하고 의아한 얼굴을 마주칠지 모른다. 바로 이에모토 역을 연기하는 김남진(35)이다. 2003년 SBS 드라마 '천년지애'에서 성유리를 놓고 소지섭과 다퉜던 그 배우다.

모델 출신으로 '회전목마(MBC·2004)', '황태자의 첫사랑(MBC·2004)', '12월의 열대야(MBC·2004)'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종횡무진 하던 그는 '흔들리지마(MBC·2008)'를 끝으로 3년간 말 그대로 '푹' 쉬었다. 그러다 최근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에 출연한 것이다.

"사실 연극이 두려웠어요. 예전부터 제의가 있어도 선뜻 내키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마음이 갔어요. 전체적인 스토리가 좋았거든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예전보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국적인 외모 탓인지, 187cm의 큰 키 때문인지 브라운관 속 그는 주로 '럭셔리한' 재벌 2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수청년'이자 '하찮은 공무원' 이에모토가 빙의 된 탓인지 달랐다.

“음…. 키사라기 팀은 진지한 편이에요. 미키 팀은 굉장히 유머러스하죠. 근데 사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어요. 가벼운 술자리는 있지만, 연습할 때 가장 재미있어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연습만 열심히 했다’는 김남진.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음…. 키사라기 팀은 진지한 편이에요. 미키 팀은 굉장히 유머러스하죠. 근데 사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어요. 가벼운 술자리는 있지만, 연습할 때 가장 재미있어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연습만 열심히 했다’는 김남진.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어떻게 해도 어설픈 내 연기…즐겨주는 팬들 고마워"

자살한 아이돌 키사라기 미키의 열혈 팬인 이에모토는 온라인 팬클럽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추도 1주년 행사를 준비한다. 멀쩡한 외모지만, 키사라기 미키에 대한 정보만큼은 철저하게 수집하는 '오타쿠'다.

"어려웠어요. 모임의 주체가 되어서 이끌어 가는 역할이잖아요. 배려심과 리더십을 다 갖춰야 하는데, 전 실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웃음) 녹록치 않았어요. 또, 다른 등장인물(야스오, 딸기소녀, 스네이크, 기무라 타쿠야) 4명의 캐릭터가 워낙 강하잖아요. 그 사이에서 묻히면 안 되니까요."

처음 만난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대사 실수는 예삿일이었다. 예전에는 실수를 남에게 보인다는 것이 덜컥 겁부터 났지만, 이젠 그는 달라졌다. 다섯 명이 합을 맞춰가며 코믹과 감동을 종횡무진하기에 그는 "실수에 연연할 틈이 없다"고 답했다. 차라리 앞으로 해야 할 대사와 표정과 동작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극중 춤이 어색하다는 기자의 말에도 그는 웃어 보일 뿐이다. "어떻게 해도 어설퍼요. 그 모습 그대로 재미있단 분들도 계세요."

여유가 느껴졌다. 6월 9일 시작한 공연이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그는 조금씩 연극에 대한 부담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있었다.

물론 친절한 관객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관객, 공연 30분 후 벌떡 일어나 나간 커플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 입장에선 망치로 맞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놀라운 감정을 느끼는 건 0.001초에요. 나머지 관객 300명을 더 즐겁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연극, 괜찮다'라며 돌아가시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한번은 한 기자 분이 공연을 보시고는 '마감을 잊어버렸다'고 말해주셨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그렇게 함께 몰입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극성스러운 '팬'을 연기해서일까. '키사라기 미키짱'의 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난히 밝아졌다.

"10번 넘게 보는 팬 분들이 있어요. 항상 비슷한 자리에서. 요즘 자리에 좀 바꾸셨죠. 저도 얼굴을 기억할 정도예요. 음… 그리고 오래된 누나 팬들이 있어요. 제가 3년 동안 활동을 쉬면서 잠깐 흩어져 있었는데 이번에 모여서 왔어요. 그동안 가정과 일에 충실하셨다고. (웃음) 고마웠어요. 한번은 일본에서 온 팬들이 3박4일 있다 가셨어요. 2번이나 보고 가셨어요."

자못 들뜬 표정이었다.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키사라기 미키짱'은 김남진을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천안대학교 피아노학과 졸업)도 아니고,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연습 때마다 연출에게 지적을 당했다고 말했다.

"촉박한 제작 환경에만 길들어 있었어요. 물론 모델이나 영화, 드라마, 연극 모두 연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요. 하지만 연극은 온몸으로 연기해요. 풀샷이고, 컷팅도 없고. 카메라 대신 관객의 눈은 몇 백 개고. 그래서 많이 배웠어요. 대사만 외우는 게 아니라, 대본을 보는 시선의 깊이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느꼈죠."

김남진은 일하는 현장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연극이 가장 좋다고. “얼마 전 미쓰에이 뮤직비디오를 찍었어요. 예전에 많이 찍었었는데도, 참 어색하더라고요. 근데, 참 기분 좋은 설렘이었어요. 아님, 미쓰에이 때문인가? (웃음)”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 공연이 기다려진다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김남진은 일하는 현장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연극이 가장 좋다고. “얼마 전 미쓰에이 뮤직비디오를 찍었어요. 예전에 많이 찍었었는데도, 참 어색하더라고요. 근데, 참 기분 좋은 설렘이었어요. 아님, 미쓰에이 때문인가? (웃음)”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 공연이 기다려진다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스톰 전속 모델 화려했던 20대, 30대에 들어서며 '사춘기'

김남진은 "그렇게 이제 다시 연기를 배워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8년 차 연기자로서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화려했던 20대를 떠올렸다.

"제 20대는 꿈꿔왔던 삶이었어요. 재미있게 살았던 건 자부해요. 연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엔, 놀고 일하고 놀고 일하고. 즐거웠어요. 디자이너, 뮤지션, 화가 예술인들도 많이 만났어요. '앤디 워홀의 팩토리 피플'처럼. 모델은 배우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도 하고."

90년대 말, 당시 의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던 많은 이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김하늘, 배두나, 김민희, 유지태, 소지섭, 송승헌 등 한동안 '모델 출신'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녔던 30대 초중반의 스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남진도 1997년 스톰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첫 작품 '천년지애'에서도 주연자리를 꿰찼다.

"그러다 사춘기가 30대 초반에 왔어요. 20대에는 즐거워서 몰랐어요. 누구나 힘든 시기가 오잖아요? 그때였어요. 이래저래 3년 동안 활동을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책이나 영화, 음악을 듣고…. 딱히 뭘 하진 않았지만, 정말 많이 놀았어요. 돌이켜 보면 3년은 분명히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또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때마다 열심히 사는 지인들을 만났다. 그 모습에 긍정적인 생각과 기운을 받았다고 했다. 김남진은 그것을 두고 "인복이 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작품이 '키사라기 미키짱'이다.

"연기할 때 오히려 편해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카메라 앞이 좋아요. 평소 말투나 화법이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임기응변도 약하고. 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달라져요. '쪽대본'이어도 빨리 외워서 연기하는 게 신기했어요."

실제 김남진은 생각이 많고, 주로 듣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액션!" 소리에 다른 인물이 되는 연기가 흥미로웠다. 자신이 아닌 듯한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연기는 우연히 하게 됐지만, 어느 순간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흔들릴 때마다 기회가 왔거든요. 이번 연극도 그렇고요. 연극이 끝나면 감정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 좋아요. 2시간 동안 집중해 있다가 마지막에 모든 것이 여과되는 느낌? 에스프레소 내리 듯이요."

시적인 비유를 들어 연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그가 말한 목표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6일까지 이에모토로 잘 끝났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먼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골치 아파요. 있지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하는 건. 그게 아니어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요. 배우의 삶을 살고 싶다는 장기적인 목표는 있지만, 우선 연극을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고 싶고, 또 오늘 공연을 잘 하고 싶어요."

마지막까지 그의 얼굴은 확실히 편하고, 행복해 보였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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