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비리 의혹’ 임상규 총장 자살 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잘못된 만남의 결과 참혹”… 압박 느낀듯

임상규 순천대 총장(62)이 자살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동안 검찰 수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임 총장은 일명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와 관련해 수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영업정지 전 예금액을 부당 인출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임 총장의 동생 승규 씨(54)는 13일 “형님이 함바 비리 브로커 유상봉 씨(65)로부터 끊임없이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 “악마의 덫에 걸렸다”

임 총장은 A4용지 한 장의 유서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악마의 덫’이라고 표현했다. 임 총장은 “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망쳤다.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 그동안 너무 쫓기고 시달려 힘들고 지쳤다. 더 이상 수치도 감당할 수 없다”고 적었다.

또 그는 “모두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만남에서 비롯됐다. 잘못된 만남과 단순한 만남 주선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금전거래는 없었다”고 호소했다. 또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고통이 심하다. 얄팍한 나의 자존심과 명예를 조금이나마 지키고 대학의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떠난다”고 덧붙였다.

임 총장은 유서에서 적은 ‘악마의 덫’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과 임 총장 주변에서는 임 총장이 자신은 물론이고 선의로 지인들과 유 씨의 만남을 주선했다가 현재 상태에 이른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생 승규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형님이 유 씨에게 많은 사람을 소개시켜 줬는데 이는 인간적 관계 때문이지 돈과는 무관했다”며 “유 씨가 함바 비리로 구속된 후 나에게도 ‘돈을 빌려 달라’, ‘손을 써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승규 씨는 “유 씨가 지난해 구속되기 전 검찰이 자신을 수사하는지 알고 형님에게 ‘검찰 고위직을 소개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며 “이후 유 씨가 검찰에서 형님이 소개시켜준 사람들 이름을 대고 이들이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하자 형님이 무척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한편 순천대는 임 총장의 장례를 학교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빈소는 순천 성가롤로병원 장례식장이고 영결식은 16일 오전 10시 순천대 체육관에서 열린다.

○ 부산저축銀 부당 인출은 해명 결론

임 총장이 연루된 함바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여환섭)는 최근 유 씨에게서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사 현장의 식당 운영권을 수주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임 총장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내사를 벌여왔다. 유 씨는 지난해 7월 임 총장이 취임할 무렵 순천대 학내 농협 지점에서 2000만 원을 찾아 전달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금품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등을 기소하며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던 검찰 수사는 이때부터 재개됐다. 검찰은 임 총장을 출국금지하고, 계좌를 추적하는 한편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며 임 총장의 소환 일정을 검토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소환 통보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유 씨로부터 1억5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임 총장 동생(건설업자)의 계좌도 추적하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조사해 왔다.

임 총장의 자살과 함께 함바 비리 사건 수사와 공판도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임 총장에 대한 개인적 수사는 그의 죽음으로 사실상 종료됐다. 하지만 이날 오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던 강 전 청장에 대한 공판도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예정돼 있던 유 씨가 임 총장 자살 소식을 듣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출석을 거부해 연기됐다.

한편 임 총장의 부산저축은행 부당인출 의혹을 수사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부당인출 의혹이 소명됐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3일 임 총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2시간가량 조사했다. 임 총장은 이 자리에서 “동생과 아들에게 돈을 빌려주려고 은행과 저축은행 등 10곳의 돈을 모두 인출했다. 미리 정보를 듣고 해지한 것이 아니다”고 진술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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