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역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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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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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타…역전…다시 동타…연장 ‘魔의 홀’서 19억짜리 파 환호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 TV 중계를 지켜본 열성 골프팬은 지각을 감수해야 했다. 최경주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역전 우승 드라마는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 아일랜드 그린을 점령한 완도산 탱크

대회 장소인 미국 플로리다 주 폰테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TPC 스타디움 코스 17번홀(파 3)은 까다롭기로 소문났다.

호수 가운데 섬처럼 그린을 조성했는데 전장은 137야드로 짧지만 변화무쌍한 바람 탓에 공을 물에 빠뜨리기 일쑤다. 악천후로 하루에 26홀을 돌았던 최경주는 130야드인 이 홀을 3차례 쳐야 했다. 최경주는 공동 선두였던 4라운드 이 홀에서 9번 아이언 티샷을 홀컵 3m에 붙여 버디를 낚아 단독 선두에 나섰다.

데이비드 톰스와 처음 연장전을 한 것도 17번홀이었다. 첫 연장전 경험이라 어색한 표정을 지은 최경주가 제비뽑기로 티샷 순서를 결정한 뒤 먼저 친 공은 홀컵에서 12m 지점에 떨어졌고 톰스는 5.5m에 떨어뜨렸다. 불리해 보인 최경주의 버디 퍼트는 홀컵 90cm에 붙은 반면 톰스는 내리막 경사를 타고 홀컵 1.1m를 지나갔다. 무난히 파가 예상된 톰스의 파 퍼트는 홀컵을 스쳐 지나갔다.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최경주는 파 퍼트를 넣은 뒤 오른쪽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우승상금 171만 달러(약18억7000만 원)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1∼4라운드와 연장전을 포함해 17번홀을 5차례 치른 그의 성적은 1언더파. 마의 홀이 그에게는 승리의 홀이었다.

○ 궁합이 맞는 코스와 창의력

1999년 미국에 건너와 이 대회 코스에서 30분 거리에 집을 얻어 자주 훈련했던 최경주는 “코스가 길고 바람이 심해 언더파를 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는 대체로 해마다 골프장이 바뀐다. 서른이 넘어 미국에 진출한 최경주는 낯선 잔디와 레이아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람은 김치를 보기만 해도 이게 얼마나 익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골프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최경주는 매년 같은 코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2002년부터 10년 연속 출전해 그린의 굴곡, 위험 요소 등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만 개최되는 마스터스에서 강한 이유도 비슷하다.

최경주는 이날 1타 차 2위였던 16번홀(파5)에서 티샷이 나무에 맞고 다행히 바로 아래 짧은 러프에 떨어졌지만 홀컵까지 251야드가 남았다. 레이업을 한 뒤 72야드를 남기고 그린까지 걸어가 경사를 읽은 뒤 공을 띄우지 않고 9번 아이언으로 러닝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그린의 경사에 공을 태워 안전하게 파를 지켰다.

톰스는 이 홀에서 245야드를 남기고 투온을 노리다 해저드에 공을 빠뜨려 보기를 해 최경주와 동타가 됐다.

최경주는 18번홀에서 그린을 놓쳤지만 25야드 어프로치 샷을 1.2m에 붙이며 파를 지켜 톰스의 5.4m 버디 퍼트에도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순간의 선택과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트로피의 향방을 갈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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