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마을사람들 오촌댁 “조상님들 뵙는 듯… 옛 추억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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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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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일가 - 마을 주민들 서울로 집구경
촛대 - 주전자 등 일상 생활도구도 옮겨와

“봄이 되면 제비가 날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곤 했지. 생각들 나니?” 경북 영덕군 원구마을 오촌댁에 살았던 남병혁 씨 8남매와
그 가족들이 1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이전 복원된 오촌댁 건물을 둘러보며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봄이 되면 제비가 날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곤 했지. 생각들 나니?” 경북 영덕군 원구마을 오촌댁에 살았던 남병혁 씨 8남매와 그 가족들이 1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이전 복원된 오촌댁 건물을 둘러보며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일 오전 6시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마을. 주민 30여 명이 새벽부터 서둘렀다. 집이 사라진 빈 터를 슬쩍 쳐다본 뒤 버스에 올라탔다. 그 집은 무사히 잘 지어졌을까. 다소곳한 원래 모습을 되찾았을까.

오전 11시 반. 버스는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경내로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모두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덕군 영해면 원구마을은 반가(班家)의 고택으로 유명했던 곳. 영양 남씨의 집성촌이다. 기자가 지난해 7월 이곳에서 그 집을 처음 보았을 때, 벽체와 기둥은 일제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당시 동행했던 국립민속박물관의 박선주 학예연구사(한국건축사)가 “저 상태로 20년 가까이 버텨 왔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163년 된 이 한옥이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 되살아났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 고택을 기증받아 해체 작업을 마친 뒤 서울로 옮겼고 조립복원 과정을 거쳐 최근 이건(移建) 공사를 마쳤다. 이를 기념해 국립민속박물관 초청으로 이 집에서 살았던 주인 남병혁 씨(50) 남매들과 친인척, 원구마을 주민들이 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이 집은 오촌댁(梧村宅)으로 불렸다. 영덕군 창수면 오촌마을에서 남 씨의 할머니가 시집오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건물이 무너지려 하자 10여 년 전 남 씨 가족들은 집을 떠났다.

지난해 이 한옥을 서울로 옮기고 싶다는 민속박물관의 제의에 남 씨는 잠시 고민을 했다. 5대째 살아온 집, 남 씨 8남매가 모두 자란 집, 원구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눠온 집…. 그러나 남 씨는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남 씨의 부탁은 집터에 표지석 하나 세워 달라는 것뿐이었다. 곧바로 실측과 설계를 마치고 지난해 8월 해체에 들어갔다. 해체 도중 상량문을 발견해 184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민속박물관에서 오촌댁을 둘러보던 남 씨.

“마을의 문중 어른들은 처음에 ‘네가 고쳐서 살지’ 그러셨어요. 생활 능력이 됐으면 제가 수리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지요.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집이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되살아나다니….”

단지 건물만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던 생활도구까지 모두 옮겨왔다. 이불장 이불 낫 명주지팡이 항아리 촛대 그릇 고무신 주전자 등등. 박 연구사는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씨의 8남매 가운데 큰누나만 빼고 모두 왔다. 조카들도 왔다. 모두들 원구마을을 떠나 울산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서 살지만 옛집을 보고 싶어 모인 것이다. 남 씨의 둘째 누나 남명규 씨(66)는 “여기서 살다가 스물다섯 살 때 대구로 시집갔는데, 어머니 쓰시던 이불도 그대로 있네”라고 추억을 떠올렸다. 남 씨의 조카 이미경 씨(27)도 “어린 시절 외가를 찾아 군불 때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남 씨의 셋째 매형 신영윤 씨(66)는 방 하나를 가리키더니 “여기서 첫날밤을 지냈어. 아들 둘을 낳았지”라며 껄껄 웃었다.

이날 국립민속박물관 오촌댁 앞마당은 원구마을의 마을잔치가 벌어진 듯했다. 남 씨의 당숙(5촌 아저씨) 남명 씨(79)는 “조상 어르신들이 다시 살아오신 것 같다”며 좋아했다. 원구마을 오촌댁 길 건너에 사는 남병수 씨는 “집이 무너질 것만 같아 늘 아쉬웠는데 경복궁에 들어와 복원이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분 좋게 막걸리를 들이켰다.

오촌댁 이건 작업은 2009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진행해오고 있는 박물관 마당 전통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일환. 박 연구사는 “ㅁ자형으로 내부가 매우 독특해 연구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이전 복원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곳을 한옥스테이 등 체험 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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