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익단체 수준의 국회 법사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0일 03시 00분


이달 11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준법(遵法)지원인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 상장회사에 법규 준수를 돕고 감시할 상근 준법지원인을 1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했다. 기업 경영의 선진화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지만 감사 고문변호사 사외이사 법무 부서 또는 윤리경영 부서를 두고 있는 기업에는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다. 법안 처리 과정과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익 목적보다는 변호사들에게 새 밥그릇을 만들어주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제도는 2009년 9월 의원입법으로 발의됐으나 기업의 반발에 부닥치자 국회 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가 1년 6개월간 처리를 미뤘다. 그러다 다른 6개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7개 개정안을 하나로 묶어 10일 기습 통과시켰고, 다음 날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기업에 영향을 주는 제도를 당사자도 모르게 슬그머니 처리한 것부터 떳떳하지 못하다.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을 자산 규모 1000억 원 이상으로 정할 경우 대략 1000개 기업이 준법지원인을 둬야 한다. 자격 요건을 변호사, 5년 이상 법학을 가르친 교수 또는 법률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못 박아 사실상 변호사들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부터 로스쿨 출신과 사법시험 합격자를 합쳐 한 해 2500명의 변호사가 신규로 진입하는 변호사 업계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기업에 주는 부담이 무거워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에서 법사위는 상원으로 불릴 정도로 위상이 막강하다. 각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은 본회의 상정에 앞서 반드시 법사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법안 체계와 자구(字句) 심사’가 주 목적이지만 다른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한 법안을 정략적인 이유로 깔아뭉개거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 변호사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변리사법 개정안과 법무사법 개정안은 1, 2년째 법사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법사위인가.

새 제도 시행으로 중소기업에 과중한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시행령을 만들 때 자산규모 하한선을 높여 준법지원인 제도 적용 대상 기업의 수를 줄여주면 좋겠지만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변호사 업계와 한통속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조계 이익단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법사위의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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