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야화] “나는 선배다?” 전관예우 예능, 시청자들 뿔났다

  • Array
  • 입력 2011년 3월 21일 14시 41분


코멘트

●제작진의 원직없는 결정에 의해 두번 죽는 가수들
●'노이즈 마케팅'? 방송도 이제는 중요한 공공재…

"굉장히 의왼데…7등은 김·건·모."

'쌀집아저씨'란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MBC 김영희 PD(51)의 입이 무겁게 열리자 모두가 침묵에 휩싸였다. '나는 가수다'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차 평가순위, 즉 1등(윤도현)과 7등을 직접 공개한 것이다(심사위원이 500명의 청중이었기 때문에 프로듀서 이외에는 적당한 발표 대상자가 없었다).

3주차에 접어든 신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규칙은 단 한 가지였다. 2주마다 '경연'을 통해 1명씩 탈락시킨다는 것. 빈 자리는 새로운 가수에 의해 대체되는 이제껏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는 말 그대로 '서바이벌 노래 대결'이었다. 가수들의 진검승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폭발했고 동시간대 1위를 지켜온 KBS '1박2일'까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공중파 예능국장을 경험한 최고참 PD가 '의외'라는 사견(私見)을 공공연하게 천명하면서 축제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실제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 김건모는 실제 완벽하지 못한 무대를 선보였다. 평범한 편곡과 진지하지 못한 공연 태도로 가장 낮은 득표수를 기록한 것. 노래 자체가 김건모에 어울리지 않아 충분히 7위를 기록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가수들의 반응은 진지했다. 당장 '최고참 선배'인 김건모(1968년생)의 탈락을 목도한 후배들은 숙연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

잔인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참가자와 시청자들이 모두 전율했다. 그것이 데뷔 20년차의 중견 가수이건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던 이건 간에 '사전 합의'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공언된 변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감동은 5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김건모가 뒤로 물러서려는 찰나 기가 막힌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 이소라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떨어져 슬프단말야"

MBC TV 화면 촬영.
MBC TV 화면 촬영.
참가자이자 MC, 그리고 2번째 연장자인 이소라가 촬영을 거부하는 돌출행동을 보였다. 동료의 탈락을 지나치게 슬퍼한 그는 자신의 발언을 포함한 해당 상황을 편집해 달라는 말과 함께 무대에서 퇴장해 버린 것. 즐겁게 놀자고 시작한 '게임'이 죽자고 덤비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변질된 것이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참가자들 7명 모두 술렁이는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윤도현의 매니저 김제동이 나서 "재도전 기회"라는 황당한 제안을 던지고 만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제작진은 (의도했을 수도 있지만) 긴급회의를 통해 출연진과 당사자가 동의하면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재도전'이라는 중대 결정을 김건모에게 미룬다.

이후의 상황은 알려진 그대로다. 김건모는 "올해가 자신의 데뷔 20년이기 때문에 불명예 하차하고 싶지 않다"며 독이 든 사과인 '재도전'을 덥석 물고 만다. 새로운 '나는 가수다' 후보 가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6명의 후배가수들의 최고의 무대는 물론 500명의 배심단의 노력 또한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가장 황당한 표정을 지은 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 담담한 패배를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시청자들이었다. 방송이 끝난 저녁 7시부터 인터넷 게시판은 온통 파행으로 끝이 난 '나는 가수다' 제3회 분량에 대한 불만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 선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칼날 같은 시청후기를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다른 가수들이 모두 아름답고 예뻤다…그런데 재도전 어쩌구 소리가 나오면서 순간 이건 무슨 소리? 분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할 때. 하지마! 깨끗이 받아들여! 그래야 건모가 건모인거야! 결과는 재도전. 저런. 건모가 거모됐네. 쯔쯔 MBC 에이고오오 쯔쯔쯔쯔…탈락했어도 김건모는 김건몬데…"

■ 김수현 "탈락해도 김건모는 김건모...건모가 거모됐네"

MBC TV 화면 촬영.
MBC TV 화면 촬영.

비난의 화살은 이런 어색한 상황을 유도한 다양한 참여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덥석 '재도전'이란 의사 결정을 내린 김건모에게는 "나는 선배다?" "전관예우"라는 비판을, 급격한 심경변화로 흥겨운 잔치를 파국으로 이끈 이소라에게는 "방송 부적격자"로, 뜬금없이 재도전이란 카드를 내민 김제동에게는 "오지라퍼(오지랍이 지나친 사람)"라는 비판이 가해진 것.

이 가운데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대상은 다름 아닌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를 비롯한 제작진이었다. 과거의 관행에 빠진 제작진이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불만이 게시판을 가득 채운 것이다.

지난 3주간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만들어가는 무대에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무대였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바이벌 노래경연이 선사한 잔인하지만 멋들어진 경쟁의 미학이었던 셈이다.

특히 제작진이 당초 7명의 초대형 가수 그 누구라도 떨어질 수 있는 상황임을 철저하게 고지하고 섭외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시청자들과 공개적으로 규칙을 천명했던 것이다. 더구나 1회 방송에서는 가수 정엽을 중간평가 7등으로 공지하면서 '공개망신'을 주기도 했다. 이 역시 시청자들에게 "잔인하지만 적응이 필요한 수순"이라는 느낌을 전달한 중요한 절차에 해당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장 결정적인 고비에 닥치자 마치 예상하지 못했다는 양 기존의 모든 합의를 무효화하는 우를 범했다. 그 순간 즐거운 예능프로그램을 '방송사고'로 추락한 것이다.

결국 시청자들이 나서 "컨셉의 실패가 아니냐"면서 "7등이 탈락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으면 '1등'이 양보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란 제안까지 하는 상황이 됐다. 더 이상 제작진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인 것이다.

■ 방송이 PD 맘대로? 이것은 시청자 우롱…

녹화방송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제작진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음모론도 나온다. 실제 '나는 가수다'는 게임 방식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통해 주말 예능의 강자로 우뚝섰다. 순간 시청률이 20%에 육박하는 등 한동안 5%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MBC 주말 예능에 활력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간 모든 서바이벌 게임은 '게임 방식에 대한 논란'을 먹고 살았다.

지금은 스타로 거듭난 '유재석'만 해도 제작진의 배려로 서바이벌 게임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경우가 있었고, 현재 금요일 밤 MBC의 서바이벌인 '위대한 탄생'의 재일교포 권리세 씨 부활 역시 제작진의 배려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모든 논란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고 방송사는 이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가수다' 논란을 통해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더 이상 '논란'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 졌다. 당장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은 물론 원인 제공자들의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이 가해진 것이다.

특히 방송의 특정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비합리적 상황은 더 이상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시청자들의 집단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열광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시길 권합니다"

한 누리꾼은 다음과 같은 댓글로 제작진을 질타했다. 이번 '나는 가수다' 사태는 더 이상 방송이 PD의 놀이터가 아니라 사회와 함께 숨쉬는 '공공의 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