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존을 향해/2부]<1>양심마저 버리는 ‘新치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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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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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맘, 촌지-고액과외가 반칙? 내 자식 챙기는데 어때…
원칙맘, 엄마 덕에 잘하면 뭘해… 애도 반칙하면 어쩌나

내 자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반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올인(다걸기)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 사회의 공존이 가능하다. 이 사진은 주부모델 심성은 씨와 딸, 딸과 또래인 아이가 기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한 뒤 촬영한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내 자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반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올인(다걸기)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 사회의 공존이 가능하다. 이 사진은 주부모델 심성은 씨와 딸, 딸과 또래인 아이가 기사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한 뒤 촬영한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유명 변호사였어요. 남편은 판사였고. 하지만 자식 앞에선 법도 없었죠. 아들 불법 과외는 물론이고 자기소개서 대필까지 제가 해줬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강사 원모 씨

“딸의 인터넷 수강신청을 대신 해주기로 했다면서 어떻게 하는 건지 묻더군요. 기말고사 앞두고 ‘애가 아파서 공부를 못했다’며 제 계좌번호를 묻는 엄마도 있었어요. 이젠 엄마 전화면 조교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유모 교수

“어떨 땐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와요. 자식이 왜 입사시험에 떨어졌는지, 승진에선 왜 물을 먹었는지…. 회사로 찾아오는 분도 있고, ‘얼마면 되겠느냐’며 노골적으로 묻는 분도 봤습니다.” ―대기업 인사담당 박모 부장

세 가지 사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엄마’다. 엄마의 그늘은 이제 자녀의 연령을 초월한다. 대학 보내기에 ‘올인(다걸기)’한 뒤에도 엄마는 자녀를 품는다. 대학생 자녀의 동아리 활동 관리, 취업정보 제공 등은 물론이고 자식이 결혼한 뒤엔 손자 학교 상담까지 해결해 주는 세상이다. ‘슈퍼맘’들은 묻는다. “내가 능력 있고, 여유 있어 자식을 챙긴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내 자식 감싸기가 촌지 제공, 불법 과외 등 반칙으로 이어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공평하지 못한 경쟁을 일삼는 ‘반칙맘’들은 반칙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어 못하는 ‘원칙맘’들과의 공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반칙맘은 어떤 방식으로 왜 반칙을 하는 걸까. 동아일보는 2명의 반칙맘을 만나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 이런 현실 “아이가 못하는 건 내 탓” 반칙맘 2人이야기를 들어보면


○ 축구맘 태원이 엄마…
작년에 들인 돈만 2000만원 감독님 용돈은 주전보장 보험


제 아들 태원(가명·초등학교 4학년)이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덕분에 제 하루 일과도 축구 관련 기사 검색으로 시작하죠. 기사를 검색해서 스크랩한 뒤 태원이에게 건네줍니다. 오전 10시부터 다섯 시간 정도 학교에서 태원이를 응원해요.

태원이는 저녁에 쉬지만 전 더 바빠집니다. 학교 담임선생님이나 감독님도 자주 뵙고, 운동장에 가서 프로축구 등 경기도 꼼꼼히 챙겨 봐요. 학교 축구부 후원회에 참석해서 엄마들과 진학 관련 정보도 교환합니다.

지난해 축구 때문에 태원이한테 든 돈만 2000만 원이 넘어요. 전지훈련비, 축구용품비 등 눈에 보이는 지출도 꽤 크지만 음성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1년에 4, 5차례 감독님께 용돈이나 상품권을 드려요. 보통 한 번에 50만 원 정도 씁니다. 대회 앞두곤 그 액수가 커져요. 집안 형편이 여유 있는 몇몇 부모만 할 수 있는 특권이자 주전을 보장받는 ‘안전판’이죠.

태원이와 경쟁 포지션에서 뛰는 아이의 부모는 철저히 따돌려요. 감독님께 은근슬쩍 안 좋은 얘기를 흘리고, 진학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죠.

이런 게 반칙이란 건 알지만 남들 다 한다는 생각에 안 하면 불안해요. 태원이가 주전으로 못 뛰면 저 때문이란 생각에 자책감도 들고요. 요즘엔 ‘집을 왜 샀지’란 생각이 들 만큼 아이만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 예고맘 예진이 엄마…
매달 교수님 찾아 ‘성지순례’ 대학 간판은 엄마하기 나름


제 딸 예진(가명)이는 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음악 시키려면 매년 집 한 채 내놓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실제로 지난해 예진이한테 쓴 돈만 수천만 원이 넘습니다. 각종 연주회비, 레슨비, 의상비, 교통비 등에 2000만 원이 넘는 그랜드피아노까지 샀어요.

예고 엄마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 뭉쳤다가 등을 돌려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죠. 엄마들은 ‘대학은 엄마가 보낸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학교 선생님, 음대 교수님 등을 얼마나 자주 찾아뵙느냐에 따라 대학 간판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죠. 저도 매달 한 번 이상 ‘성지순례’(선생님들을 찾아뵙는 일)를 합니다. 위스키, 핸드백 등 선물은 물론이고 상품권, 현금 등을 드립니다.

음악 콩쿠르 등을 앞두곤 항상 “○○ 엄마는 얼마를 썼네”라는 말이 돌아요. 저도 쓸 만큼 쓰지만 딸이 좋은 성적을 못 받으면 ‘내가 부족해서 그렇게 됐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요. 그러다 보니 더 쓰게 되고, 더 집착하게 되는 거죠.

전 사실 맞벌이로 일해서 다른 엄마들보단 딸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돈을 더 쓰죠.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할까요. 사실 반칙을 해도 죄책감은 없어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딸을 ‘공주님’으로 만들고 싶은 건 모든 엄마의 바람 아닐까요.
▼ “애정이 아닌 집착이었다” 원칙맘 변신 철중이 엄마의 반성문

■ 이런 대안


철중(가명·12)이 엄마 김미숙(가명) 씨. 그녀는 반칙맘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2년 전 원칙맘(반칙을 하지 않는 엄마)을 선언했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지금 후회하진 않을까. 다음은 그녀가 전하는 ‘원칙맘 변신 스토리’.
철중이는 어릴 때부터 좋다면 남 눈치 안 보고 다 시켰어요. 그거 다 시키려면 당연히 반칙도 해야죠. ‘약육강식’ 강남 사교육 시장에서 애가 살아남으려면 반칙을 해서라도 앞길을 터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초 전국 초중고교 재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6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8.6%가 ‘촌지 제공 경험이 있다’, 53.2%가 ‘촌지는 뇌물이 아니다’고 응답

생각이 바뀐 건 2년 전 ‘그 일’이 있고부터였죠. 애가 갑자기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만 가면 울었어요. 말도 없어지고, 학교 숙제도 안 하고. 한동안 그런 행동을 해서 남몰래 애를 데리고 병원 정신과로 갔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8년 7∼19세 아동·청소년 정신질환 진료현황’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학생의 진료 수치가 100명당 3.8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는 멀쩡하다. 집중력도 좋다. 다만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이를 위축시켰다”고 했어요. 엄마가 지나치게 자기 아이만 챙기다 보니 사회성이 떨어지고, 성격도 자기중심적이라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난해 ‘학생 정서·행동 발달 인성검사’ 결과 학생 24만2055명 가운데 12.8%인 3만908명이 정밀검진이 필요하다고 나왔다


남편과 상의 끝에 일단 서울 강남구 개포동 집을 정리하고 경기도에 있는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갔어요. 저도 제 취미를 갖기 시작했죠. 사회봉사활동도 이때부터 다녔습니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엄마가 아이의 학교, 학원,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이란 ‘트라이앵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반칙맘 유혹을 떨칠 수 있다”고 강조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죠. 하지만 반년쯤 지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철중이가 달라졌거든요. 말도 많고, 항상 웃고, 본인이 나서 반장까지 할 만큼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지금 담임선생님 도움도 컸습니다. 넌지시 촌지 얘기를 꺼냈더니 “그런 것 받아본 적 없다”며 오히려 속 깊은 얘기를 해주셨거든요.

―서울시교육청 이범 정책보좌관은 “학부모 교사 정부 사이 신뢰의 끈이 회복되고, 반칙을 강요한 교사에는 강력한 처벌이 따를 때 반칙맘을 원칙맘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애정과 집착이 다르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반칙을 하면 시험 성적 10점은 올릴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도 똑같이 반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면?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애 어른’이 된다면? 그때도 엄마가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요.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동영상=검사가 높을까? 판사가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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