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구가인]루저스피릿⑫ ‘한국에 사는 지구인’ 마붑알엄의 ‘러브 인 코리아’

동아일보 입력 2010-09-24 14:54수정 2014-08-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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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영화 '반두비'의 주인공
● "장편 극영화를,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대안학교 만드는 게 꿈"
그는 한국독립영화계의 '덴젤 워싱턴'이라고 불린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출신 독립영화인 마붑알엄(33)은 지난해 한국인 소녀와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청년의 우정을 그린 영화 '반두비'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물론 그는 그 외에도 '로니를 찾아서' '시티 오브 크레인' 등 5, 6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한 바 있고, '쫓겨난 사람들' '리터니' 등의 독립다큐멘터리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그를 한국에 알린 작품 '반두비'. 이주노동자와 한국 여성과의 사랑을 담은 파격적인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또 이주노동자 방송국에서 몸담았고, 5년 전 이주외국인 영화제를 처음 만들어 두 차례 집행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나는 지구인이다'(텍스트)라는 책까지 냈다.

책에서 그는 한국에 사는 젊은 이주민으로서 인종과 종교, 계급을 벽을 허물면서 '지구인'으로 살아온 30년 남짓한 삶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그는 현재 본인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영화 '러브 인 코리아'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영화계의 '덴절워싱턴' 방글라데시 출신 마붑알엄

- 참 다양한 일을 했고, 하고 있다. 스스로는 자신을 뭐라고 소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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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게 참 어렵다(웃음). 그냥 짧게 말하면 영화인이라고 하는 게 맞다. 영화에 출연하고,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 영화에 출연한 건 반두비가 처음이 아닌 걸로 안다.

"맞다. 우연한 계기로 2005년에 '복수의 꿈'이라는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땐 호기심이 컸다. 방글라데시에서 연극 동아리를 잠깐 했는데,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었다. 마침 영화도 이주노동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니까 한번 해보자 한 거다. 처음으로 내 얼굴을 그렇게 큰 화면으로 보니까 어색하더라(웃음)."
마붑 알엄 씨가 출연한 영화 \'반두비\'와 \'시티 오브 크레인\' 포스터

- 그 후부터는 줄곧 영화작업을 한 건가.

"카메라를 든 건 그보다 먼저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2000년대 초 고용허가제 반대 투쟁을 하면서 미디어 운동이란 걸 알게 됐다. 카메라를 들게 된 건 2002년부터고 그 이후엔 주로 시민방송인 RTV 등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방송일은 하지 않고 있고 개인다큐멘터리 작업에 틈틈이 출연하는 정도다."

- 이주민 입장에서 한국의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 다를 것 같다. 최근 공중파 TV프로그램에서 다문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얘기는 너무 많이 했는데…(웃음). 글쎄 미디어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도 방송을 시작한건데…. 기존 공중파에서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너무 불쌍하거나, 아니면 웃기거나. 그나마 최근 좀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답답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러브 인 아시아' 보면서 감정적으로 눈물 많이 흘리지만 왜 그렇게 불쌍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한 때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블랑카 때문에 길을 다닐 때 마다 아이들로부터 '사장님 나빠요'라고 놀림을 받았다. 시커먼 피부의 이주민이니까 당연히 나를 안 좋은 사장 밑에서 일하는 불쌍한 공장 노동자라고 보는 거다. 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각, 늘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로만 비춰지는 게…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나를 불쌍하거나 우습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니까."

- 그런데 실제로 많은 다문화 가족에게 지원이 필요한 거 아닌가.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보이지 않을 경우, 지원이 왜 필요한가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여전히 많은 이주민, 다문화 가족들은 지원이 필요한 게 맞다. 하지만 지원 방식에 문제가 있다. 어느 정도는 지원에 의지해도 평생지원 받을 순 없다. 그런데 이주민 센터나 이런 곳에서는 주로 계속 돕기만 한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이 도움 받는 대상이라고 여길 뿐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 늘 이런 식의 지원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건 시각의 문제다. 물론 '미녀들의 수다' 등은 그런 점에서 좋은 오락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거기서는 또 '러브 인 아시아'와 반대로 잘 사는 사람 이야기만 나오는 게 답답하다. 둘 다 문제라는 게 아니라, 둘만 있으니까 문제라는 거다. 또 국제결혼으로 이뤄진 다문화 가족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오는 많은 이주민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데 한국은 지나치게 결혼 이주민 중심의 논의만 있는 것 같다."

▶11년 전 한국으로 건너와 이제는 귀화 준비 중

마붑알엄은 1999년 처음 한국에 왔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한 때 헬싱키 유학을 계획했지만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형이 있는 한국을 택했다. 2, 3년만 있다가 떠나려 했던 초기의 목표와 달리 그는 11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 사이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을 했고 현재 귀화도 준비 중이다.
마붑 알엄씨는 11년전 한국으로 이주한 이후 꾸준하게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해왔다. 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

- 처음 한국에 오신 목적은 무척 단순했다. 어머님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좀 복잡해진 것 같다.

"아니다. 의외로 단순하다(웃음). 일단 처음엔 어머니가 편찮으시고 힘드니까 빨리 돈을 벌어서 돌아가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한국에 온지 6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서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졌다. 꿈이 깨진 거다. 이후에 아내를 여기에서 만났고 또 다른 관계들이 생기면서 한국에 머물게 된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 거다."

- 방글라데시라는 공간 자체가 고향으로서 그리운 곳은 아닌가?

"물론 어머니가 내겐 가장 중요했지만 그 외에도 그리운 곳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니까 서로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사는 방식이나 이런 모습이 때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혼자서 많이 놀란다. 그리고 서울에선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길을 잃어버릴 때 아, 내가 한국인이 됐구나 생각을 한다. 고향이란…추억이 아닐까. 만일 내가 한국을 떠나서 또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면 한국도 내게 그런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고향은 뿌리나 민족 그런 거 보단, 가족, 친구… 나한텐 그런 것들이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 한국에 사는 동안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많은 이주민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나 역시 많이 겪었다. 한국에 온지 12년이 다 돼가지만 매일 듣는 질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다. 이건 스트레스다. 하지만 좋은 게 더 많고, 그런 게 있으니까 한국에 사는 거다. 난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한국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이거 나쁘다고 하는 것보단 서로 고민해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마붑알엄을 알 게 된 건 다른 취재 때문이었다. 제3세계 남성과 한국 여성커플과 관련 다문화 가족 기사를 쓰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자신 외에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부각하는 게 곤란하다"는 말과 함께 "그와 관련한 주제로 워낙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영화 '반두비'는 그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그만큼 대가도 컸던 셈이다.
마붑 알엄씨의 꿈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인의 편견을 깨는 일이다.

- 반두비에 출연한 계기는?

"신동일 감독과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출연하면서 알게 됐다. 그 뒤 감독님이 '반두비' 하려는데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컨셉트 자체가 방글라데시 배경 이주노동자 얘기라 흥미로웠다. 시나리오 중간에 이슬람 문화권에서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조언을 하다보니 자꾸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 감독님과 주인공 배역을 찾아 나섰는데 그 조건이 까다로웠다. 잘생겨야 하고, 체류자격도 되어야 하고, 한국말 잘 해야 하고. 주변에서 찾는 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제안했다. 제가 하면 안되나요(웃음). 감독님은 처음엔 놀랐는데 관심을 보이니까 조건부로 허락했다.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일을 관두고, 살도 빼야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전문배우는 아니었지만 잘하고 싶어 방송을 비롯해 하던 모든 일을 관뒀고, 연기지도까지 받았다. 살도 12Kg이나 뺐다. 물론 영화 끝난 지금은 다시 쪘지만(웃음)."

▶반두비 영화 돕다가 직접 "제가 연기하면 안 되나요?"

- '반두비' 이후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늘었을 것 같다.

"가끔씩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저예산 영화에 관객 수가 많진 않았지만 알아주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 영화제에 가면 특히 많이 알아보는데, 누군가 '반두비'라고 하고 다가오고. 그럼 재미있긴 하다."

- 반면 협박전화도 받았다고 들었다.

"반두비는, 좋아하는 분도 많고 새로운 시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싫어하는 분들은 집단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악성 댓글은 물론 직장, 친구들에게 항의나 협박전화를 하기도 했다."

- 항의?

"조용히 있으라고. 왜 그런 영화를 찍느냐면서…. 심지어 어떻게 알았는지 나한테 전화해 살해하겠다고도 했다. 별다른 내용도 없었다. 시꺼먼 외국인 남자가 왜 한국여자랑 연애를 하느냐는 거다. 그런데 사실 영화는 연기하는 거고, 그건 감독의 의지인데, 유독 항의는 나에게만 왔다."

- 감독은 항의를 안받았나?

"신기하게도 안받았다. 감독의 영화인데(웃음).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한국에 요즘 국제결혼이 많은데, 한국남자가 다른 나라 여자랑 연애하거나 사랑하면 문제가 안 되는 거고 반대는 문제가 되는 거더라. 실제로 나 역시도 국제결혼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거였는데, 만약 반두비가 방글라데시 여자와 한국인 남자면 아무 이야기가 없었을 거다."

지난해 '반두비'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영화작업을 하는 중간 자신의 연기가 필요한 곳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을 하는 편이다. '선덕여왕' 등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지난 5월 개봉한 '시티 오브 크레인'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 또 다른 영화 '시티 오브 크레인'은 저예산 영화라고는 하지만, 개봉한 사실조차 제대로 홍보가 안됐다.

"아리랑TV에서 지원한 '한국을 만난다' 시리즈 5편 가운데 하나인데, 아마 마케팅비가 부족했었나 보다. 개인적으론 좀 서운했다. 그나마 해외 영화제 몇 군데에서 상영됐고, 계속 나가는 게 있어서 좀 다행이다."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시티 오브 크레인'

- 작품에 만족하는 것 같다.

"다른 작품은 몰라도 '시티 오브 크레인'은 굉장히 좋았다. 문승욱 감독님이 나와 비슷한 게 있다. 한국에선 자신도 이방인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도 유학 한지 10년 만에 한국에 와서 어려움을 느꼈다고 하더라. 이 영화는 페이크다큐멘터리로 시나리오가 없었다. 너무 리얼하게 다룬 점이 정말 만족스러웠다. '반두비'나 '로니를 찾아서' 이런 영화들이 아쉬웠던 건, 앞에 말했듯 '러브인 아시아'의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착하고 순진한 이주노동자인데 월급을 못 받거나 강제 처분 당하거나… 그런 불쌍한 면이 있는 캐릭터. 영화로선 필요하겠지만 배우로서는 매번 그런 작업만 하는 게 아쉬웠다. 반면 '시티 오브 크레인'에서는 오히려 한국인 여자가 이주민 같고 반면 나는 잘난 척 하는 캐릭터다(웃음)."

▶또 다른 이주노동자에 대한 영화제작 중, 최종 목표는 장편극영화

-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최근에는 '시'를 좋게 봤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영화 많이 보고 좋아한다. 한국, 영화 잘 만든다. 영화판이 너무 힘들어서 문제지. 물론 나도 고민이다. 이게 비전이 있을까. 여러 가지 걱정도 되고."

- 앞으로 계획은?

"현재 한 지역 문화재단 지원으로 이주예술가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주민으로서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을 찾고, 이들끼리 서로 교류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캠프를 기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연기는 최근 케이블에서 시트콤 하나 제안 들어온 게 있다. 11월 촬영인데 구체적 내용이 나오진 않았다. 그리고 영화는 지금 '러브 인 코리아' 후반작업 중이다."

- '러브 인 코리아'의 내용은 무언가.

"이 작품도 다큐멘터리인데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영화팀이 9명이 왔는데 감독 포함해서 6명이 사라졌다. 감독이 방글라데시에서 상업영화 22편 연출한 사람인데 그 사람도 그렇게 사라진 거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왜 사람들이 이주를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거의 완성을 했고 잘되면 올해 개봉할 예정이다."

- 지금 꾸고 있는 꿈은.

"장편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 또 아주 먼 꿈으로는 방글라데시에 대안학교를 만드는 거다. 학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미디어 문화 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싶다. 한국 예술가들을 초청강사로 보내서 아이들 가르치게 하는 거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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