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의 의욕-감각에 반해 인재들 속속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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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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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개국 당시 아나운서 실장 전영우 교수

“동아방송이 처음 생겼을 때 동아일보가 하는 방송이라 청취자들의 인식이 달랐어요. 직원들 사이에서도 기존 방송이 못했던 것, 안 했던 부분을 채운다는 설렘이 있었죠.”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당시 아나운서 실장이었던 전영우 수원과학대 초빙교수(75·사진)는 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에 KBS는 국영방송, MBC는 민간 상업방송, CBS는 종교방송이었는데 동아방송은 이 세 가지 특성에 제한되지 않고 보편적이며 격조 높은 방송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KBS 아나운서로 근무하다가 동아방송 개국과 동시에 아나운서 실장으로 영입됐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강제 통폐합 조치로 폐방될 때에는 아나운서 담당 부국장 겸 뉴스 해설위원을 맡고 있었다.

그는 “동아방송이 문을 열 때 KBS 아나운서 8명이 이쪽으로 옮겨 다른 신문에 ‘KBS 아나운서 기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다들 동아방송이 지녔던 새로운 의욕과 감각에 설레서 많이 이동했다”고 말했다.

동아방송이 첫 전파를 쏘아 올릴 때 방송 시작을 알리는 인사말을 한 것도 전 씨였다. 그는 “민주언론의 자유를 확보하고, 민족문화의 형성에 공헌하고, 광고의 전파 매체로서 사명과 기능을 발휘하겠다는 취지의 인사를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국내외가 격변기여서 시민들은 뉴스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특히 동아방송은 ‘소리로 듣는 동아일보’라 청취율이 높았어요. 뉴스의 하이라이트가 정오뉴스였는데 10∼15분 진행하는 뉴스를 어떤 때에는 30분으로 연장하기도 했어요.”

동아방송이 방송업계 처음으로 시도해 선례로 남은 프로그램도 많았다. 대표 사례가 방송 캠페인이다.

“아침에 국장실에서 간부회의를 하다가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연료를 함부로 써서 되겠느냐, 캠페인 노래 ‘걸어서 가자’를 만들어 내보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가사를 제가 썼고 ‘스폿(spot)’ 형식으로 방송 시간이 빌 때마다 틈틈이 내보냈습니다.” 1964년 서울 명동 미도파백화점에 국내 최초로 스튜디오를 만들어 시민들이 방송제작 현장을 직접 볼 수 있게 한 것은 ‘보이는 라디오’의 선구였다.

전 교수는 “얼마 전 지하철 역내 방송에서 동아일보의 인터넷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경험은 지혜이고 교과서인데, 동아일보가 동아방송을 했던 경험은 나중에 방송사업을 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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