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공병호]불법복제 방관하는데 닌텐도처럼 될까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왜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우리는 개발할 수 없느냐.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은 정말 왜 그럴까라는 답을 생각하게 한다.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훨씬 큰 문제가 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술이 아무리 우수해도 결국 소프트웨어가 빈약하면 닌텐도 신화는 한국에서는 영원히 만들 수 없다. 아마도 이 대통령은 닌텐도의 게임기라는 외관에 주목했을지 모르지만 실상 닌텐도의 경쟁력은 게임기 안의 다양한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경쟁력에 달려 있다.

업계로 하여금 닌텐도에 맞먹는 제품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하기 이전에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필자의 사례가 적합한지 잘 알 수 없지만, 강연을 자주 하는 필자는 그동안 CD로 들을 수 있는 강연을 딱 한 번 시중에 출시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시장의 평가도 우호적이었지만 업체의 거듭된 요구에도 일절 CD 제작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불법 복제가 너무 손쉬워서이다. 한번은 강연차 방문한 업체에서 무려 200여 개를 만들어 지인과 관련 업체에 배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습니까”라고 답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복제가 가능한 상품을 일절 만들지 않았다. 강연을 CD로 만들어서 많이 출시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그렇게 취급받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콘텐츠 훔쳐도 죄의식 없는 한국

이런 일은 비단 필자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대학가에는 예사롭게 교재를 복사해서 사용하는 일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일어난다. 타인의 지적 재산을 적절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복사해서 사용하는 일이 지금도 빈번하다. 오죽했으면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들이 항의성 데모까지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대학가에서도 ‘필요하면 복사해서 쓰면 그만이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대학교재의 상황은 그나마 낫다.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의 노고(勞苦)의 결정물로 등장하는 영화가 예사롭게 복제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내려받아서 사용하는 사람도 흔하다. 이런 일에 대해서 실제로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고 일벌백계(一罰百戒)도 행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복사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무슨 큰 문제가 있습니까”라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더라도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사업이 번성할 수 없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인다.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태라면 누가 그런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사람이 닌텐도 게임을 즐기지만 정품 게임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아마도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찬찬히 검색해 보면 도처에서 더 다양한 게임을 공짜로 구할 수 있어서다. 콘텐츠에 관한 한 한국은 공짜 천국이자 불법 복제 천국이라 불러도 좋다.

아무도 그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물건을 훔치면 범죄이지만 한국에서 불법 소프트웨어를 훔쳐 사용하는 데는 죄의식이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하드웨어 산업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업체 가운데 국내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의 현주소는 참담하다고 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앞으로도 불법 복제가 지금처럼 허용되는 한 현재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이 하드웨어 산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듯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무엇이든 속도감 있게 만들어 내고 변화의 추세를 읽는 능력 면에서 한국인은 뛰어나다. 그들이 그런 능력을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제대로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력에 대한 대가를 수확하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가 무슨 보조금을 손에 쥐여 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세금을 받고 나선 응당 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불법 복제를 막아주는 일이다.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유명 포털 사이트에 일정 부분 책임을 묻고 불법 복제자에게 벌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물리는 일을 한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얼마든지 근절할 수 있다.

‘무단사용 근절’ 정부 제 할일 해야

“이 강연은 녹음이나 녹취가 불가능하오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이런 이야기를 꼭 덧붙이면서 필자는 매번 강연을 시작한다. 남의 지적 재산을 아무렇게나 복제해서 사용하는 일은 언제나 없어질 수 있을까? 그날이 한국인의 소득수준이 4만, 5만 달러가 되는 날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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