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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2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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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로 미국과 일본이 한국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바로 10여 년 전 우리가 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를 이겨내기 위해 실시했던 혹독한 구조조정이다. 이를 통해 경제의 거품과 부실을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풍전등화의 한국 경제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세계 경기의 반전이라는 외부 요인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바도 있지만 이때의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밑바탕이 됐다.
지금 미국이 금융위기로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2000년대 초반 경기후퇴 때의 잘못된 정책처방에 원인이 있다. 당시 미국 경제는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기를 맞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경기 침체기를 부실과 거품을 걷어내는 구조조정 기간으로 활용하지 않고, 금리 인하라는 마약처방으로 침체를 회피하고자 했다. 이 때문인지 경기 침체기는 짧은 기간에 국한된 듯이 보였지만 결국은 당시의 초저금리 정책이 오늘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의 근본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美日 혹독한 구조조정 외면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이유도 역시 미흡한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경기 침체기를 맞은 일본 정부는 부실 정리는 뒤로한 채 금리인하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데만 주력했다. 이에 따라 경기가 잠시 좋아지는 듯했으나 결국은 다시 주저앉는 모습을 반복하면서 10년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 사이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오늘의 한국도 10년 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세계경기 침체의 여파로 국내경기가 급속하게 하강하고 있고, 이에 따른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정부는 추경예산 편성, 금리 인하라는 카드로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은행의 중소기업대출에 대해 만기를 1년간 연장하도록 했다.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결국 누군가의 손에 돈이 들어가게 되므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금리인하는 돈을 빌린 모든 사람의 이자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에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만기를 모두 연장해준다면 이는 중소기업들에 가뭄에 단비같이 고마운 정책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한국 경제를 잠시 지탱하는 진통제가 될 뿐이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독(毒)이 돼 돌아올 것이다. 경기 침체기의 재정지출 확대는 결국 국가부채의 증가를 의미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세계 신기록의 속도로 진전되는 상황에서 경제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재정이 흔들리게 된다. 저금리의 지속은 결국 또 다른 거품을 유발하거나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다.
재정확대-저금리 재검토를
모든 은행이 중소기업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줄 때 경기 침체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부실은 결국 은행들이 대부분 떠안게 될 것이다. 이미 공적보증기관을 통해 정부에 대한 의존성이 깊어진 중소기업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더욱더 정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허울뿐인 유령기업들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정된 자원이 부실기업 지원에 집중되면서 새로운 유망기업의 탄생은 더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오늘도 잃고 내일도 잃는다. 구조조정은 누구나 싫어한다. 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도 아마 돈을 빌려준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고민한다면 마약처방은 최소화하고 누구나 싫어하는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부문의 구조조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아프지 않고 성숙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강석훈 객원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경제학 shkang@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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