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염희진]설 관객 8명 위해 귀성 포기한 배우들

  • 입력 2009년 1월 28일 02시 59분


26일 오후 불황의 여파로 잔뜩 움츠린 서울 대학로의 설날은 더욱 썰렁했다.

24시간 영업을 내세운 패스트푸드점을 제외하고 식당이나 카페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공연장도 마찬가지였다. 몇 해 전부터 명절 당일 ‘틈새 공연’이 열렸지만 이 또한 경기 한파로 주춤해진 데다, 이번 설날은 공연 휴무일인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극단이 무대를 쉬었다.

하지만 26일 오후 3시 소극장 ‘아츠 플레이 씨어터’에서는 연극 ‘매직룸’의 무대가 열리고 있었다. 6일부터 이 연극을 선보여온 극단 문화바구니는 오히려 설날에 공연을 두 차례나 열었다.

공연장 실내는 기자가 앉아 있기 미안할 정도로 휑했다. 20대 연인부터 50대 부부까지 관객은 고작 8명. 공연에 앞서 한 스태프는 “관객이 없어 휴대전화의 진동소리도 크게 느껴지니 아예 꺼 달라”고 부탁했다. “설날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참, ‘가족적인’ 분위기 같다”고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연극의 줄거리는 교도소 내에서 전직 배우 철수가 에이즈 감염자인 마수리에게 마술로 상처를 치유 받는 내용이다. 등장 배우는 김성태 윤상화 박민규 씨 등 3명.

“설날 낮 공연은 무리였지만 공지를 해온 터여서 취소할 수 없었다”는 극단 관계자의 푸념과 달리 관객의 반응은 작지만 뜨거웠다. 배우의 호흡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둘러앉은 세 명의 배우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전남 목포, 전북 군산, 경남 마산이 고향인 이들은 공연 때문에 ‘귀성’을 포기한 상태였다. 소극장 무대의 특성상 관객의 반응이 무대로 전해져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데 오늘은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는 것이다. “‘마’가 자주 꼈다”며 속상해하는 김성태 씨를 보며 20년 된 선배 박 씨는 “2명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다”며 웃었다.

“관객이 없다고 더 잘하려고 애써도 안 되고 대충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관객이 한 명이든 100명이든 배우에게 무대는 평등한 거 아닙니까.”(박 씨)

세 배우는 이날 8명을 위해 공연했지만, 한 명의 관객이라도 있으면 무대에 선다는 우직한 뚝심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넌 무대가 있잖아. 넌 살아 있잖아. 널 기다려줄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이 있잖아”라고 말하는 극 중 마수리(윤상화)의 대사처럼…. 설날 낮 공연에 이어진 오후 6시 공연. 관객은 늘지 않았으나, 세 배우의 무대는 멈추지 않았다.

염희진 문화부 salthj@donga.com

▶ 공연 관련기사

- [양형모의 音談패설] ‘도밍고의 여인’ 소프라노 이지영
- 동방신기, 日오리콘 위클리싱글차트 5회 연속 1위 기염
- ‘멘델스존의 밤’ 서울시향 실내악시리즈

▶ 인기화보

-‘롱다리’ 미녀들…베를린 패션위크
- 너무 섹시(?)한 수영복
- 피겨 스케이팅…아찔한 가슴노출 사고
- 美2사단 아파치 헬기 사격훈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