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크리스마스의 主人

  • 입력 2008년 12월 25일 02시 58분


서울 어느 유명 교회 목사는 며칠 전 한 놀이공원의 초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 때 놀이공원에서 선보일 각종 성탄 공연과 축하 퍼레이드를 관람해 달라는 취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과 축제를 지켜본 그는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우울해졌다. 화려한 춤과 노래, 거대한 트리와 다양한 경품, 서양인이 대거 참여하는 축하 퍼레이드 등 축제 분위기가 넘쳐났지만 왠지 주인 없는 생일잔치처럼 느껴진 것이다. 특히 행사가 절정에 이르면 무대 중심에 아기 예수가 등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던 그는 산타클로스가 뛰쳐나오는 장면을 보고 아연했다. 지난주 설교에서 그는 신도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의 주인이 산타클로스입니까?”

산타클로스와 파티가 주인행세

크리스마스는 2000여 년 전 아기 예수가 유대 땅 베들레헴의 한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리스도의 탄신일인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 자체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아기 예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산타클로스와 트리, 질탕한 파티와 비싼 선물이 크리스마스의 주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산타클로스는 270년경 오늘날 터키 지역의 대주교였던 성(聖) 니콜라스라는 실존 인물과 관련된 유럽의 설화에서 비롯됐다. 남몰래 많은 자선을 베푼 그를 기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 하루 전날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해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17세기경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성 니콜라스를 ‘산테클라스’라고 불렀고,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가 돼 19세기경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산타클로스의 붉은 복장은 1931년 코카콜라사의 겨울철 판매량이 감소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캠페인 전략으로 코카콜라 브랜드의 상징 색인 붉은색 옷을 산타에게 입혀 백화점 홍보에 나선 것에서 비롯됐다. 흰 수염은 콜라 거품을 상징한다.

성서에는 예수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목동들이 밤에 들로 나와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기록 등 여러 정황에 비추어 12월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경 교회가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 이교도들을 정복한 것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섬기던 태양신 ‘미드라’의 생일인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고 있고, 예수를 구주(救主)가 아닌 한 사람의 선지자(先知者)로 간주하는 이스라엘인들은 별다른 행사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추수감사절 같은 휴일 개념 정도에 불과하다.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인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을 그저 ‘Happy Holiday’ 또는 ‘Season's Greetings’로 표현한 지 오래다. 그런 현실이어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십자가가 달린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는 미국인도 있다. 미국에서는 십자가 대신 별이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대미(大尾)로 제일 높은 곳에 별을 얹는 관습은 미국 보수층 가장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환락 대신 진정한 의미 되새겨야

주인 없는 잔치에 객(客)이 더 난리다. 크리스마스 전야인 24일 밤엔 온갖 파티와 환락이 넘실댄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술집 노래방 나이트클럽 오락장들이 손님들로 넘쳐 나고, 러브호텔은 연간 최고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아니라 ‘기쁘다 환락 오셨네’가 된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 중에는 ‘크리스마스 베이비’ 특수를 누리는 이도 있다고 한다. 즐기는 것도 좋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정도는 한 번쯤 되새겨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는 오늘 하루도 부족하지 않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