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기춘]‘소비자 프렌들리’ 행정체계 강화를

  • 입력 2008년 10월 3일 02시 58분


소비자의 시대다.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도 시작은 “안전한 쇠고기를 먹고 싶다”는 식품안전에 대한 요구에서 출발했다. 이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추진 명분이 소비자의 선택을 향상시킨다는 점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방송사의 소비자 권익보호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으며, 주요 뉴스나 사회탐사 프로그램도 소비자 문제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소비자 문제는 이제 국경도 가리지 않는다. 일본에서 논란이 됐던 독극물 만두 사건이나 중국의 멜라민 분유 사건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소비자 문제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의제가 거창한 정치 사회적 이념에 입각한 거대담론에서 생활 속의 소비자 문제로 전환하였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의제의 전환은 새로운 정책적 수요를 촉발하며, 이는 다시 해당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행정체계의 개편을 요구한다. 급식위생 파동, 식품 내 이물질 사건, 재활용 반찬 논란 등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식품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체계를 일원화하여 더 효율적인 단속과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당연한 요구다.

체감하는 위험의 크기는 식품안전의 문제가 크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 문제가 발생한다. 소비자정보 유출 사건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함부로 다루던 개인정보에 소비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동차의 결함 문제는 또 어떠한가. 새로 출시된 자동차의 결함 있는 부품을 교환하고 자발적인 리콜을 실시해 달라는 내용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스스로 조직화하고 있다. 조만간 여러 영역에서 등한시되었던 소비자의 권익을 되찾기 위한 단체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가 급변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문제에 대처하는 행정의 틀은 매우 소극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소비자보호 행정조직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현안에 밀려 미약한 형편이며, 중앙정부 차원의 소비자정책을 위한 예산, 조직, 기능도 매우 취약하다.

양적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질적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 분명한 소비자 문제의 해결과 예방을 위해 정부의 소비자정책 수립과 집행 기능, 예산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권익 보호와 문제 해결을 일관성 있게 해결하도록 소비자원을 소비자청으로 승격시키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를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라고 지칭한다. 기업의 성장과 소비자의 만족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기 때문에 소비자 만족을 위한 행정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모래 위의 성이 될 공산이 크다. 현대 경제는 비즈니스와 ‘컨슈머(소비자)’의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식품안전의 문제나 소비자권리 침해 사건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며 전혀 개선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행정시스템이 체계적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관련 부서가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대응해 온 탓이 크다. 차제에 정부의 패러다임을 소비자 지향적으로 전환하고 더 근원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소비의 질이 삶의 질이고, 소비자의 만족이 국민의 행복이 되는 시대가 됐다. 소비자 행정체계의 전면적 재검토가 절실하다.

이기춘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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