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우경]소나무는 산에서 살고 싶다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우리와 가장 친숙한 나무는 소나무일 것이다. 평생을 소나무와 함께 사는 게 우리 민족이다. 예전에는 소나무 목재로 집을 지어 살았고 죽으면 소나무 관에 묻혔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소나무 생피를 벗겨 배고픔을 이겨냈고, 오늘날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먹거나 동쪽으로 뻗은 가지의 잎을 가루로 내 선식으로 먹는다.

또 애국가 2절에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그 기상을 높이 샀고, 나무 중에는 유일하게 벼슬을 한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정이품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군자나 절개, 지조 등으로 비유됐으며, 화객들이 즐겨 그렸던 화재이기도 했다. 이런 소나무가 최근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신음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1970년대만 해도 소나무는 옮겨심기가 어려워 조경용으로 활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중장비나 특수토양을 이용한 조경 기술이 발달해 10m가 넘는 소나무도 쉽게 옮겨 심게 되면서 전국에 소나무를 조경용으로 심는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부터 크고 작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한 그루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소나무를 마구잡이로 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도심지 2차로의 좁은 도로에도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도로는 어둡고, 소나무는 그늘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야생 소나무를 옮기기 위해서는 뿌리와 가지를 잘라야 하는데 본래의 품위 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앙상한 모습만 남게 된다.

소나무는 공해가 없고 물 빠짐이 좋으며 햇볕이 내리쬐는 산 능선에서는 잘 자라지만 공해가 심하고 그늘진 도심지에서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나무다.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도쿄를 중심으로 도심지의 소나무가 거의 자연 도태되자 한 학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잘 자라는 도시는 건강한 곳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 산림의 대표 수종이던 소나무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서서히 한반도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서어나무류, 참나무류가 차지하면서 2043년에는 한반도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도심지 고궁에서 잘 볼 수 있다. 1825년경 창덕궁과 인접한 창경궁을 조감도 식으로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장독 하나까지 상세히 그려 놓은 ‘동궐도’(국보 제249호·고려대 박물관 소장)를 분석해 보면 소나무가 전체 수목의 약 20%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2002년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결과는 소나무가 8.6%로 격감했고, 그나마 살아 있는 소나무도 싱싱하지 못했다.

요즘 한국의 소나무는 소나무 에이즈라는 재선충에 바구미류, 소나무좀, 솔나방, 솔잎혹파리 등 각종 병충해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런데도 소나무가 아름답고 고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마구잡이로 산에서 캐내 조경용으로 심고 있으니 크게 잘못됐다. 조경수는 포지에서 번식해 키운 소재만 이용해야 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야생목을 이용하도록 국토해양부 제정 조경공사 표준 시방서에 명기돼 있다.

옛날에는 솔가지 하나만 부엌에 있어도 산감이 샅샅이 뒤져 벌금을 내게 하거나 유치장에 잡아가두는 시절도 있었다. 그 덕분에 산림녹화를 성공적으로 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낮에 버젓이 산에서 큰 소나무를 캐오고 있는데도 관할 관청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민족과 수많은 애환을 나누며 함께 살아온 소나무다. 머지않아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이라도 품위 있게 살다가 떠나도록 소나무를 더는 괴롭히지 말자. 소나무를 살려주자.

심우경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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