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이 표류해선 안 된다

  • 입력 2008년 6월 10일 23시 26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우려에서 비롯된 촛불시위가 어제로 40일째 이어졌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광화문 등 도심을 메운 참가자들은 오늘 새벽까지 ‘쇠고기 고시 철회, 재협상, 이명박 정권 심판’을 외쳤다. 6·10민주항쟁 21주년인 어제 일부 시위자들은 1987년 민주화 시위 도중 희생된 연세대 이한열 씨의 영정도 들고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이어 한승수 내각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으며,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쇠고기 추가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시위는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어제 저녁 시위 현장에 찾아가 “사죄하러 왔다”며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 大選서 행사한 主權 부정은 憲政 해쳐

시위 참가자들은 아직도 민주주의에 목말라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현됐는지 몰라도 실질적 민주주의,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외쳤다. 쇠고기 시위는 그래서 6·10민주항쟁과 맥이 닿는다고 했다. 정부를 비롯한 집권세력에 1차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참된 소통, 국민의 마음을 자신들의 마음처럼 읽으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죄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명박 정권의 진퇴(進退)를 넘어, 건국 60년 저편의 선진 대한민국으로 달려가려는 다수 국민의 꿈이 부서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데도 선진국의 꿈이 저절로 이루어질 리는 없다. 우리는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여세를 몰아 이제 선진화로 나아가려 한다. 그것이 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이요 시대정신이다. ‘촛불’이 아무리 순수하고 아름다워도 나라의 진로에 장애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땅덩어리 좁고, 에너지도 자원도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길은 나라 밖으로 뻗어나가는 방도 말고는 없다. 자유무역이 그 길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 결정적 발판이 될 것이다. 한미 FTA 발효의 절박성이 쇠고기 졸속 협상의 한 원인(遠因)으로 작용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의 중요성을 인식해 일부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정 체결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비준, 발효시키기 위해 쇠고기 협상을 서두르다 실수를 했다. 그 대가도 치를 만큼 치렀다. 분노한 촛불 앞에서 머리 숙였고 국정쇄신책도 마련 중이다.

그렇다면 국민도 이제 냉정하게 되짚어볼 때다. 어떤 정부가 국민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이려 하겠는가. 쇠고기 협상은 분명 잘못됐다. 이를 인정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을 제때 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그러나 일부 시위자들이 “미국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니겠는가.

정부는 뒤늦게 검역주권을 명문화하고,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규제를 요청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의 불신을 충분히 씻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 실패는 정책 실패로 받아들여야 촛불시위의 정당성도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정부에 실망하고 정부가 미워졌다고 해서, 국민이 합법적 선거를 통해 선택한 대통령을 ‘촛불과 구호의 힘’으로 퇴진시키려 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헌정(憲政)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시위대의 구호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난해 12월의 대선이야말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안에서 3700여만 유권자가 주권(主權)을 행사한 민주주의의 결정체(結晶體)였다. 정부에 불만이 생기고 커졌다고 해서 언제나 촛불로 대통령의 퇴진을 시도한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

○ “이명박 숨통 조이기”가 촛불의 뜻일 순 없다

촛불시위가 대통령 퇴진 요구로 발전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명운(命運)에 관한 문제이기 전에 60년간 어렵게 가꾸고 쌓아온 헌정질서의 기초를 흔드는 국민적 자해(自害)행위가 될 수 있다.

노동계 일부세력은 촛불시위의 힘을 이용해 ‘이명박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강력한 파업’에 나서려 하고 있다. 많은 이익집단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전체가 표류할 수밖에 없다. 촛불시위를 기화로 사회의 모든 집단과 세력이 평소의 불만을 한꺼번에 털어놓는다면 정부는 어떻게 기능하고 나라는 또 어떻게 유지되겠는가. 대한민국이 떠내려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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