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오늘날 아프리카 미술계가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8회째를 맞고 있는 다카르비엔날레를 잘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모순을 지양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다카르비엔날레가 두 부분, 즉 아프리카 작가만이 참여하는 본 전시와 국적에 관계없는 ‘off’ 전시로 나뉘어 진행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본 전시는 서구의 현대미술을 좇는 모습이 보이고 오히려 ‘off’에는 아프리카는 물론 서구의 작가들마저도 아프리카의 색채와 형태를 나름대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본 전시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현대미술 혹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갈증이 아프리카 특유의 시각과 에너지로 풀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성을 정체성의 새로운 내용으로 소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다카르비엔날레는 서구 미술시장에 편승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안미술에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 한국 작가들의 그림과 사진을 들고 다카르를 찾았다. 많은 사람이 왜 다카르에 왔느냐고 우문(愚問)을 한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눈치다.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태국은 이미 참여했는데 한국은 좀 늦었다고 능청을 떤다. 그러면서 최고의 전시장인 빌라주데자르(Village des Arts)에 어떻게 한국관이 만들어졌느냐고 부러움과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한국관의 설치는 특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화를 세계사적으로 풀어내려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그들의 눈에 너무나 강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한국관의 오프닝 행사에서 만난 벨기에 신문기자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세상에는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트와 같은 큰 통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세상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길이 널리 열려 있는데 우리는 크고 유명한 것에만 집착한다. 비록 제3세계 비엔날레가 작고 미약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큰길에 이르게 하는 작은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서구 미술계가 주목하는 다카르비엔날레에 한국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의미와 용기가 함께한 뜻 깊은 사건이 될 것이다.”
다카르비엔날레도 이제 종반을 향하고 있다. 지금 누군가가 다카르에 왜 왔느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선택하지 않은 길은 그저 가지 않은 길로 남을 뿐이다. 내게는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길에서 다카르를 선택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느낌이다. 다른 한 발자국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남이 가지 않은, 혹은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동적(動的) 심성과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충돌이 나를 또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할 것이다.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