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진성]北, 이번엔 꼭 세계와 악수를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00분


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북한에서 300만 대량 아사가 절정에 이르렀던 1999년 내가 평양시 동대원구역 시장에서 직접 목격한 불우한 모녀 이야기이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딸을 백 원에 판 것이다. 먹고살 만하다는 평양도 그랬으니 지방은 오죽했을까. 그때 나는 그 백 원 앞에서 ‘이런 나라, 이런 국민으로 만든 김정일의 몸값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계산해 보았다. 그로부터 시작된 주민들의 ‘백 원 고통’이란 생각에 증오와 분노만 속에서 울컥 치솟았다.

눈물의 詩품에 안고 두만강 건너

그런데도 오늘날 북한 정권은 백 원짜리 나라를 핵보유 강성대국으로 자처한다. 과연 무엇이 강성이고 어떻게 대국이란 말인가. 좋은 국가가 아니라 강한 국가만을 지향하는 독재정권이라 해도 어떻게 감히 300만 명의 목숨을 묻어놓고, 그 친인척들과 후대, 지인들을 향해 강성대국 인민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북한에서 살아보았고 탈북 후 현재 남한 국민으로 살고 있다. 두 체제를 경험하고 보니 남한의 주식(主食)은 밥인데 북한의 주식은 핵무기였다. 김정일 정권의 체제논리에는 애당초 인민의 존재란 없었다. ‘제국주의 포위’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 ‘남조선 괴뢰들의 북침 준비’, 이렇듯 격앙된 말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들의 삶이 아니라 원수를 의식해야 했고, 그 때문에 숙명처럼 굶어야 했고, 죽어야 했다. 우리는 가난만이 아니라 성격과 기질도 같아졌다. 순종과 복종만을 알아야 했고 명령하면 자폭도 강요당해야만 했던 인민의 이름을 가진 노예였다.

그렇기에 북한이 감행한 핵실험은 한반도를 진동하는 300만 아사자들의 곡성이었으며 찢어지고 부서지는 살과 뼈의 소리였다. 김정일의 핵병기야말로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비극과 슬픔의 산물이다. 국력은 국민의 웃음이다. 남한에는 자유와 민주의 웃음도 있고 핵무기는 없지만 우주에 태극기를 심어놓은 선진국의 웃음이 있다.

이 웃음이 커서 북한에 나누어줄 구제미도 있고 인도주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북핵을 이기는 인간 승리의 웃음이고, 탈북하는 마음들까지 합쳐지는 통일과 민족의 소리 큰 웃음이 아니겠는가.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자처하면서도 웃지 못하는 세계 최빈국이다. 남북은 땅과 체제만이 아니라 웃음과 눈물로 상반되는 감정과 정서의 분단이기도 하다.

내가 품에 안고 두만강을 건넌 시는 글이 아니라 가져온 눈물이다. 참으로 그 땅에서는 눈물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고아들의 서러움, 부모들의 고통, 동냥하는 인민의 모습이 그대로 내 눈에서 흘렀고 그래서 나는 시인이 아니라 울보였다. 내가 참아야 될 눈물이 아니라 그들이 참아야 멈추어지는 눈물이어서 나는 빌었다. 오 하늘이시여! 내가 울고 내가 그칠 그 좋은 날이 과연 언제 옵니까. 북한은 핵실험을 했을 뿐, 하나 그 땅의 사람들은 이미 원폭 피해자들이다.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고통까지 가져가는 원폭이었지만 김정일의 핵은 생을 허용해 그 생으로 또 죽이는 독재의 핵폭탄이다.

테러지원국 벗어나 함께 살자

미 국무부가 ‘2007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으나,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경우 이에 맞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국제사회가 보내는 구원의 마지막 손길이다. 북한은 이 손을 잡아야만 연명할 수 있으며 국제지원도 받을 수 있다. 또 그래야만 백 원에 딸을 판 어머니와 팔린 딸이 밥의 세상에서 상봉할 날도 올 것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 아니다. 300만 아사 연고자들이며 함께 죽지 못한 양심이고 살아있는 분노이다. 만약 북핵을 계속 고집할 경우 김정일 정권은 민심 핵폭탄에 자멸할 것이다.

장진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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