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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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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사회는 현재 IISI 회장인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주재했다. 이 회장의 위상 강화는 경영자로서의 개인적 역량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회사가 세계 철강업계에 영향력이 큰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김상영 포스코 전무도 홍보분과위원장 자격으로 함께 러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현지 철강업체 임원이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고 비싼 휴대전화’라고 자랑하면서 보여준 제품이 삼성전자의 애니콜이었다”고 전했다. 대표단이 투숙한 특급호텔 객실에는 LG전자의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다. 이 회장과 김 전무는 한국 기업 브랜드를 만날 때마다 새삼 가슴이 뿌듯해졌다고 했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하다 보면 두 사람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느낀 마음을 이해한다. 이국(異國)의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만난 현대·기아 자동차, ‘대우’라는 이름이 붙은 길을 발견했을 때 나오는 탄성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코리아의 재발견’이다.
1970, 80년대 대학가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이 팽배했다. 지금도 내 서가(書架) 한편에 꽂혀 있는 당시의 빛바랜 좌파(左派) 경제 서적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기업 주도 한국 경제’의 파멸을 전망했다. 오랜만에 들춰본 그 책들의 저자 가운데는 지난 10년간 고위직을 거친 인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자. 국경을 뛰어넘는 글로벌 경쟁과 기업 덩치 키우기의 바람이 거세게 부는 지금 ‘거짓 선지자’들이 그렇게 매도했던 대기업들이 없었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한국은 외국 대기업들의 하청 기지로 전락하면서 세계사적 경쟁의 메인 플레이어가 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업의 수난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5년만 보더라도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LG를 제외한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SK 등 세 그룹이 과거의 부정적 유산(遺産)과 경영권 승계 관련 세제(稅制)의 비현실성, 대기업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곤욕을 치렀거나 치르고 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적절한 제재가 불가피하다. 다만 극단적 비난과 처벌만이 최선의 해법인지는 좀 고민해봤으면 한다. 우리 경제에 미친 그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도 필요하다.
기업과 기업인들의 사기는 전체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일하는 보람을 느낄 때 보통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가 ‘세계 최강 미니기업’ ‘업종별 입사 선호 기업’ ‘2008 재계 파워엘리트’ 등 기업과 기업인의 세계를 분석한 장기기획 시리즈를 잇달아 연재하는 것도 우리 공동체에 ‘비즈니스 세계’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 특파원으로 일하거나 해외 취재를 하면서 나는 ‘여권(旅券)의 값’이란 말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가끔은 실망스럽고 안타깝더라도 한국의 기업들은 우리가 아끼고 키워야 할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코리아’를 더 많은 나라에서 만나기 위해서라도.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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