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실용간담회’ 신선한 충격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으레 하는 형식적인 간담회인 줄 알았는데, 즉석에서 건의를 채택할 정도로 실용적인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세정(稅政) 관련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처음에 “이거 말을 잘못하면 찍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힘든 부탁이지만 그래도 청장님을 믿고 말씀드리겠다” 등을 연발하며 어려운 기색을 내보였다.

하지만 간담회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밝아졌다. 한 청장이 현장에서 즉시 견해를 밝히면서 받아들일 것은 수용하고, 안 되는 것은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다”고 분명히 말하는 등 진지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한 청장은 “세무조사 면제 대상을 확대해 달라”는 요청에 “소규모 성실사업자 판정기준 중 수입 금액을 기존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본보 28일자 A1면 참조

또 “매출 채권에 대한 압류는 극약 처방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매출 채권 압류를 후순위로 돌리겠다”면서 배석한 국세청 간부들에게 “지침을 하나 만들고 바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대기업이야 세무사를 고용하면 되지만 중소기업은 세금을 내기 위해서 힘들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세금 신고서 기재 내용을 단순화하는 등으로 납세협력비용을 대폭 줄이고 이를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평가받겠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 경제단체가 정부 고위 인사를 초청해 마련한 간담회는 대체로 ‘공허한 자화자찬’을 늘어놓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참석자들은 “정부 고위 인사를 만나면 오히려 부담감만 늘어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는 새 정부 출범 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국세청장과의 간담회도 한 청장이 먼저 요청했고 국세청 주요 간부가 구체적인 세정을 직접 설명했으며 즉석에서 일부 애로사항을 바로 해결해 중소기업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흐름이 정권 초 일회성 행사로만 그치지 말고 공무원 사회에 체화(體化)되었으면 한다.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시대의 공직(公職) 개혁도 이런 것이 아닐까.

박형준 산업부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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