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주헌]휘발유 절약 누진가격제가 효과적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물가 관리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정부가 서민 생활과 밀접한 생필품 52개 품목을 선정하고 이들 가격을 집중 관리한다고 한다.

쌀, 전철요금, 라면 등이야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자가용 승용차 연료인 휘발유를 생필품으로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에너지 관련 지출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10%를 넘고 특히 소득계층 하위 20% 가계의 광열비, 교통비 지출 비중은 14.9%에 달해 휘발유의 생필품 분류는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휘발유 소비는 생필품과 사치재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출퇴근용 소형 승용차 연료로서의 휘발유와 레저용 대형 승용차 연료로서의 휘발유는 분명 구분돼야 한다.

이 같은 휘발유 소비의 양면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휘발유값 인상 억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 환경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대형 승용차를 이용하는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소득분배의 역진성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온실가스 배출 억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그러면 이들 정책 목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가체계는 없을까? 전기요금 체제와 같은 누진제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생필품 성격이 있는 기본 소비량까지는 저렴한 기본가격을 적용하지만 사치재적 성격이 있는 과소비량 부분에 대해서는 할증가격을 적용하는 누진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고소득층에는 소비절약을 유도하는 동시에 서민가계의 부담은 완화할 수 있다.

문제는 누적소비량의 측정과 가격 적용이다. 분명 아무데서나 주유가 가능한 수송연료의 누적소비량을 측정하는 문제는 소비지가 고정된 전기와 달리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차량별 주유카드 발급 같은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또 가격 적용은 평상시 주유 단계에서는 할증가격을 적용한 뒤 연말 소득세 신고 때 정산할 수도 있다.

누진가격제는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가령 기본소비량을 연간 500L로 정하고 기본소비량까지는 유류세 완전 면제, 초과량에 대해서는 현행 유류세 적용과 같은 누진제를 고려할 수 있다. 이 같은 누진제가 시행된다면 연간 4000L를 쓰는 차량에는 4% 정도의 유가 인하 효과가 기대되지만 1000L를 사용하는 차량에는 약 17%의 인하 효과가 기대돼 일률적 가격 인하에 따른 소득 분배의 역진성을 제거할 수 있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중국 등이 주도하는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수급 불균형이 주원인이다. 따라서 할당 관세 인하, 유통체계 개선 등의 방법만으로는 서민가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도의 유가 안정은 어렵다. 서민가계 보호가 정책 목표라면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저유가만이 능사가 아니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절약형 경제시스템은 고유가(고에너지 가격) 신호에 의해 유도되는 시스템이다.

고유가 정책을 유지한 일본이 세계 최고의 에너지절약기술국이 된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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