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무래도 이상한 박철언 씨의 돈 관리

  • 입력 2008년 3월 6일 23시 15분


6공화국 노태우 정부 때 실세(實勢) 권력자였던 박철언 씨가 수십 개의 차명(借名)계좌로 관리해온 거액의 출처와 성격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박 씨는 기자회견에서 “(타인에게 맡겼다가) 횡령당한 돈은 복지통일재단을 만들려고 선친의 유산과 친인척의 자금을 모은 돈, 협찬자들이 조건 없이 내놓은 돈을 합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1970년대 초부터 법조생활을 하면서 알뜰히 모은 돈도 종자가 됐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렇게 떳떳한 돈이라면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구차하게 숨겨놓고, 일부는 떼여 송사(訟事)까지 벌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박 씨는 모 대학 무용과 여교수를 17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했고, 고교 동창으로 차명계좌를 관리한 전직 은행 지점장을 비슷한 내용으로 고소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박 씨의 보좌관을 지낸 김모 씨는 ‘검은돈’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김 씨는 “당시 70억 원이 넘는 돈을 차명계좌로 관리했는데, 돈 나올 데가 기업밖에 더 있느냐”고 말했다. 박 씨의 위세가 절정에 달했던 1992년 4월 14대 총선 직전 그의 선거사무소는 정관재계(政官財界)의 유력 인사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당시 취재기자들은 말한다.

검찰은 “기업체로부터 받은 뇌물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수사를 통해 돈의 출처를 규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검사 출신으로 법률 전문가인 박 씨가 돈을 되찾기 위해 고소를 한 것은 법적으로 잘못될 게 없다는 자신감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검은돈’이 ‘깨끗한 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돈은 이미 국민적 공론의 대상이 됐다. 6공 정권의 비자금일 가능성까지 제기된 만큼 적당히 얼버무리는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의 엄청난 재산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를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수사당국은 고소 고발된 건(件)만이라도 돈의 출처와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 박 씨도 국민이 수긍할 수 있도록 진실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고 한때 대통령이 될 꿈까지 꿨다는 공인(公人)으로서 합당한 처신이 어떤 것인지는 스스로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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