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지예]‘마지막 수업’ 마치고 가신 선생님

  • 입력 2007년 1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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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는 한창 종강(終講) 시즌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내 심금을 며칠간 울린다. 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만 감동적인 게 아니었다. ‘마지막’이란 단어에는 늘 안타까움과 비장미가 흐르게 마련이지만, ‘영원한’ 마지막 수업에 대한 기사는 더욱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교수의 인생의 마지막 수업이며,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수업이기 때문이다.

강의 차질 우려 암 수술 미뤄

암 투병을 숨기며 종강까지 열정과 체력을 소진했던 그는 수업을 마치고 불과 몇 시간 만에 연구실에서 쓰러졌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강의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수술까지 미루며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 그는 강단에서 처음으로 말기 암 환자임을 고백하며, “수술받고 완치하여 다시 보자”란 말을 남기고 곧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 버렸다. 학생들은 그 고백의 충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잠시 후 그가 숨졌다는 비보를 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언행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으나, 그 말만은 영원히 책임지지 못하고 떠났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읽은 어떤 소설의 주인공보다 더 감동적인 인물인 그에게 연민과 존경이 사무친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제 몸 돌보기를 저 지경이 되도록 했단 말인가. 어떻게 인간이 가진 열정과 기운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토록 깨끗하게 쓰고 쓰러질 수 있는가. 그는 모든 것을 소진한 마지막 순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 그가 행복하고 떳떳하고 부끄럼 없는 생을 그 순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죽고 싶은 소망이 있다. 소방관도, 교사도, 배우도, 글을 쓰는 사람도 현장에서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열정적으로 일을 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학생들이 쓴 추모 글을 읽다 보니, 그는 아내를 위해 시도 쓰고 자주 꽃다발을 선물했던 ‘로맨티스트’이자 ‘교수님’보다는 ‘참스승님’으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따스한 한 인간이었던 그의 목숨은 그 자신에게, 또 그의 아내나 사랑하는 이들에겐 얼마나 가슴 저미게 소중했을 것인가. 결국 그가 그 소중한 목숨을 걸고 지켜 낸 것은 무엇인가. 교수는 넘쳐도 스승은 없는 시대에 그가 끝까지 지켰던 ‘마지막 수업’은 한 해를 마감하는 이 마지막 시간에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올해는 유난히 거짓말이 판치는 한 해였다. 한 여교수의 허위 학력으로 시작된 거짓말로 우리 사회는 불신의 몸살을 된통 앓았다. 지금도 대선 막바지에서 어쩌면 곧 공약(空約)이 될지도 모를 온갖 공약(公約)이 난무한다. 무책임한 약속은 하지도 말고 지켜야 할 약속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 작은 양심 하나도 제대로 실천을 못하는 우리에게 그가 보여 준 책임감이나 살신성인의 정신은 그래서 더 숭고한지 모른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소명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스승 없는 시대에 師表로 남아

그는 교수였다. 교수면 교수답게, 정치인이면 정치인답게, 예술가는 예술가답게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들답게 산다면, 직업에 대한 책임감도 인간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진 않을 것이다. 이런 자갈밭 같은 불모지에 그의 아름다운 죽음이 희망의 씨앗으로 살아났으면 좋겠다. 아니 그는 우리 시대의 사표(師表)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는 학생들만의 스승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를 보내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자. 아름답고 장엄하게 마감한 그의 마지막 수업이야말로 우리에게 ‘유종의 미’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지 않는가.

권지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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