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원수]수사를 그냥 지켜보면 될 것을…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김경준가족 - 정치권 연일 으름장

檢 “대선이 한 사람 입만 바라봐”

美처럼 ‘개그오더’ 제도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도 ‘개그 오더(gag order)’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41) 씨의 귀국을 앞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개그 오더는 미국에서 법원이 어떤 문제에 관해 토론이나 발표 등을 금지하도록 하는 명령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불필요한 사회적인 논란을 막고, 평결에 미치는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다.

검찰 관계자가 새삼스럽게 미국 법원의 평결 과정에 있는 제도를 거론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귀국하는 김 씨가 대선 정국에서 미칠 엄청난 파장 때문이다.

이제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나 의혹의 당사자 중 한쪽은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감수해야 한다. 김 씨를 수사하는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씨의 국내 송환을 앞두고 그의 가족은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며 이 후보를 겨냥하고 있고, 범여권의 공작정치를 규탄하는 이 후보 지지자들은 11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주변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범여권 진영은 “대선 후보 등록(25일) 전에 수사결과를 내놓으라”고 검찰을 압박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검찰이 수사 정보를 유출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검찰의 고민엔 과거 대선 후보와 관련된 의혹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좋지 않은 기억도 한몫하고 있다. 2002년 김대업 씨가 제기한 이른바 병풍(兵風) 사건 수사 과정에서 김 씨의 발언이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수사 진행 상황이 수시로 흘러나오면서 정치권에서 상당한 논란이 됐다.

결국 대선이 끝난 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은 물론 검찰이 정치권에 이용당했다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김 씨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보안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5년 전과 같은 상황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재경 지검의 한 중견 간부는 “어쩌다가 대통령 선거가 한 사람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검찰뿐만 아니라 국민도 후보 간 인물 대결, 정당 간 정책 대결을 해야 할 선거를 앞두고 수사기관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러다가 미국 법원의 ‘개그 오더’ 제도를 법제화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정원수 사회부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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