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대통령이 지하주차장 통해 외교청사 방문한 까닭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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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8시 반경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2층 로비.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 조치에 맞서 2주일 전부터 임시로 쓰고 있는 ‘바닥 기사송고실’이 술렁였다.

‘언론 대못질’을 기획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혁신토론회를 주재하기 위해 외교부 청사 3층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외교부 청사를 찾는 귀빈들은 거의 예외 없이 1층 현관에서 차에서 내려 계단을 통해 2층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기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노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중앙부처 장차관도 대부분 로비를 거쳐 3층으로 갔다.

하지만 행사 시작 시간인 오전 9시가 넘어도 노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청사관리 담당자들은 “노 대통령이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3층 회의장으로 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오후 3시 25분경 청사를 떠날 때도 로비를 거치지 않았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늘 하던 대로 갔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대못질로 기사송고실에서 쫓겨난 기자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냉기가 엄습하는 ‘바닥 기사송고실’에 쪼그려 앉아 기사를 쓰던 기자들은 대통령이 “한 번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라며 ‘소통’을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제의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을 피해 행사장에 들어간 뒤 공무원들에게 “공직사회는 정책을 생산, 집행하는 책임 있는 조직으로서 국민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않으면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노 대통령의 뜻을 받아 사실상 ‘언론통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라 한 것을 거부하면서 공용공간을 임의로 점거하는 것은 월권이고 특권”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기자들이 모여 있는 ‘바닥 기사송고실’을 지나는 게 껄끄러워 지하 통로를 이용한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국민과의 소통을 적극 모색하라고 주문했다니 참 어이가 없다.

하태원 정치부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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