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공무원 권하는 사회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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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녹을 먹는다는 말은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었다. 무언가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라에 충성하는 일이 인의예지의 기본이던 시절이었다. 생명이든 충정이든 운명이든 무엇을 걸어야 했기에 선비들은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고하기도 했다.

최근 젊은이들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 같다. 청년 실업이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을 넘어 삼태백(30대 태반이 백수)으로 번져 가는 시절이다. 대학생 대부분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

얼마 전 서울역 앞은 공무원시험을 치기 위해 상경한 수험생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서울시 7, 9급 지방공무원시험에 9만여 명이 몰렸다. 경쟁률만 해도 52.9 대 1이었다. 코레일이 지방 수험생을 위해 서울로 가는 임시열차를 증편할 정도였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전국 각 지방에서 상경하던 선비들의 진풍경을 연상시켰다.

대학생의 취업 1순위가 공무원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급변하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안전한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빵’이라는 사실이다. 공무원 중에서도 교육공무원은 무엇보다 젊은이들 꿈의 극치다. 최고의 신붓감은 예쁘고 날씬한 초등 교사란다. 2순위는 평범하게 생긴 초등교사, 3순위는 못생긴 초등교사.

이들에게 고상한 말로 하는 사명감이랄지 백성을 위하는(위민·爲民) 뜻이랄지 하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공무원은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도 사실은 자기일신의 안위를 가장 잘 보장받는 안전한 요새가 됐다.

공무원이나 교육자만큼 사명감 내지 인격, 인품을 요구하는 직업이 없다. 그만큼 사회적 존경과 모범의 의미를 간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변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변신하며 앞서가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한국의 기업이 초일류를 외치고 있을 때 이들 사회는 글로벌한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아도 얼마든지 철밥통을 유지한다.

이렇게 된 것이 청년만의 책임은 아니다. 1998년 국가적으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청년은 가장 예민한 시기인 10대에 경제적 위기 순간을 맞게 된다. 386세대가 정치적 저항으로 청년적 정체성을 삼고자 했다면 297세대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경제적 안정이 정체성을 결정했다. 2000년대 벤처신화도 곧 거대 자본에 흡수되고 말았다.

공무원시험과 교원임용시험에 청년이 몰리는 데에는 한국의 가부장적 전통도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국가고시에서는 남녀차별이 없으며 학연 지연 연고주의의 차별이 없다. 그럼에도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20대의 열정으로 공무원임용과 교원임용에 매진하는 모습은 왠지 안타깝다. 무한경쟁의 글로벌리즘 세대가 세계적인 전장에서 스스로 몸을 움츠린다는 생각이다. 혁명과 자유의 피 냄새는 전 세대에 속한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 국가경쟁력은 지금 젊은이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국가와 사회도 젊은이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중국이 국비유학생을 배로 늘리고 브레인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직도 교육평준화 정책으로 교육부와 대학이 반목한다.

지금의 한국 청년은 자유무역협정(FTA) 세대다. 세계적인 ‘쩐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부는 공무원 조직을 파격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청년 도전의 기회를 좀 더 혁신적으로 제공하라. 한국의 청년도 혹독한 승부 근성으로 투신하라. 당신은 우리들의 낯선 미래이며 새로운 역사이며 도전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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