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며칠 전 한 전직 재선 의원은 동네 행사를 찾았다가 자신을 ‘대선 예비 후보’라고 소개하는 한 인사를 만났다. 30년 넘게 정치권에 몸담고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진짜 출마 이유를 캐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시의원에 출마하려 하는데 이왕이면 대선 후보라고 선전하는 게 효과가 더 크지 않겠느냐. 기탁금을 내야 하는 정식 후보 등록은 포기하면 되는 것 아니냐.”
3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대선 예비 후보는 70명.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4명, 열린우리당 7명, 민주당 5명, 민주노동당 3명, 기타 정당 3명, 무소속 48명이다.
정치인 중에서도 범여권에서만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이 20명 안팎이다. 누가 봐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의 ‘출마 선언 러시’에 대해 전문가들은 ‘총선 대비용’이거나 이력서에 ‘대선 예비 후보’란 경력을 한 줄 넣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노무현 효과’를 거론하며 “내가 못하란 이유가 뭐냐”고 정색한다. 당내 경선 전 지지율 10%를 넘지 못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경선에서 유력 후보를 제치고, 대권까지 잡은 반전 드라마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를 빼고는 모두 지지율이 10% 이하니까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국민을 위해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국가를 위해 무슨 비전을 갖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씁쓸하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에선 “‘잠룡(潛龍)’은 없고 ‘잡룡(雜龍)’만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결단이 ‘용기’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세태 때문일 것이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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