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한선화]똘똘 뭉친 한민족 과학기술자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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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힘은 삼연(三緣), 즉 혈연 지연 학연의 합이라는 말이 있다. 객관적인 실력보다는 ‘끈’을 우선시하는 사회 풍조를 꼬집으면서 끈이 아닌 능력을 키워 정정당당하게 살아보라는 충고를 담은 얘기다. 더욱이 과학기술처럼 정확한 데이터와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서 실력보다 ‘연’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군의 과학기술자가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나 한민족이라는 강력한 끈으로 이어진 이들은 탄탄한 연줄을 활용해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운영하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의 회원이 그들이다. KOSEN은 세계 40여 개국에 퍼져 있는 한국인 과학기술 종사자가 유익한 정보를 주고받는 일종의 ‘사이버 사랑방’이다. 현재 4만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T3-L1 cell 키울 때 plate에 lysine coating이나 다른 ECM molecule coating 하시는 분 계시나요?”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일반인에게는 암호처럼 들릴 이 질문은 KOSEN의 ‘지식질의’ 코너에 올라온 내용 가운데 하나다. 더 난해한 질문도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온다.

놀라운 점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대개 24시간 안에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제3국의 정보를 급하게 찾아야 할 때,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정보를 입수하고자 할 때, 충분한 준비과정 없이 외국의 학회에 가고자 할 때처럼 난감한 상황에서 KOSEN의 게시판과 커뮤니티에 내용을 올리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에 퍼진 동포 과학기술자에게서 빠른 회신을 받을 수 있다.

답변을 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는 KOSEN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 보너스뿐이다. 특별한 혜택과 경제적 이득이 없다. 그런데도 회원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전폭적으로 투자해 충실한 답변을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남의 일에 왜 이토록 발 벗고 나서는가? 궁금한 마음에 직접 회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은 딱 두 가지였다. “나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 봤고 얼마나 답답한지 안다. 뻔히 알면서 도와주지 않고 배길 수 있는가? 지금 베풀면 나 또한 언젠가 (다른) 회원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내용과 “같은 한민족 사람끼리 안 도우면 누가 돕겠는가?”라는 설명이었다.

분초 단위로 새 기술이 나오는 첨단 과학기술계에서 이들이 아까운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유는 같은 한민족 과학기술자를 돕기 위해서다.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최첨단 분야일수록 경쟁자를 앞지르는 뛰어난 성과는 이처럼 사소한 도움에서 온다.

엇비슷한 수준의 정보와 기술력을 갖고 있다면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 즉 ‘암묵적 지식’과 책이 아닌 삶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경험적 지식’이 결정적인 성공의 촉매가 된다. KOSEN 회원 간의 살아 있는 정보 교류 덕분에 타국의 경쟁자를 어렵지 않게 이겨 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큰소리를 땅땅 칠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두뇌 자원이다. 뛰어난 인력이 한민족이라는 연줄로 똘똘 뭉쳐 고급 지식정보를 나누고, 어려움을 헤쳐 과학기술 선진입국이라는 대업을 꼭 이루기 바란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기술개발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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