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내가 하면 로맨스’인가…반성 없는 언론노조

  • 입력 2007년 6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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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 그런데도 내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시비를 거느냐는 태도가 더 큰 문제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 13층 공개홀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이 회의는 한 달 전 불거진 언론노조의 조합비 횡령과 전용 혐의를 둘러싸고 진상조사소위원회(진상소위)가 조사 결과를 중앙위에 보고하는 자리였다. 120여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신학림 전 위원장 등 전 집행부의 조합비 횡령 혐의, 정치자금 전달의 불투명성, 비자금 통장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진상소위는 전 총무부장의 횡령(3억여 원)은 인정했으나 신 전 위원장의 혐의 등에 대해서는 “관행이나 규정 규약의 미비, 정치자금법 해석상의 차이로 부정적인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 위원은 “내부 문제에 엄격해야 하는데도 ‘큰 무리가 아니니 이해하라’ ‘관행을 왜 시빗거리로 삼느냐’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에 정치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노조원 개인이 후원하는 것으로 바꿔 연말정산 시 일부 노조원만 환급받은 점, 방송위에서 지원받은 사업비 중 일부를 전용한 혐의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민주노동당에 전달된 정치 자금은 6000여 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위원장이 질의응답에 나선 자리에서 한 위원이 혐의를 조목조목 따지자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다른 위원의 맞고함도 나왔다. 신 전 위원장은 “모든 책임이 내게 있으니 사죄한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빨리 종결되지 않으면 정치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진상 보고서는 중앙위의 승인(참석자의 과반수)을 받긴 했지만 일부 위원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언론노조는 그동안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통절하는 마음으로 사과하며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더 투명하게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묻혀 버렸다. 신 전 위원장이 이끌 당시 언론노조가 언론계 현안에 대해서 늘 엄격한 잣대를 외치며 시위할 때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문득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떠올랐다.

김윤종 문화부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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