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헌법 파괴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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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 국민의 자유와….’ 200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한 취임 선서의 내용이다. 헌법 제69조에 규정된 취임선서 내용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성한 명령이다. 그중에 헌법수호의 의무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인 이듬해 3월 국회에 의해 탄핵 심판대에 오르고 직무가 정지되는 오점을 남겼다.

▷탄핵심판은 결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다수의견으로 기각되긴 했지만 탄핵소추를 받은 첫 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는 벗을 수 없다.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도 언론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반한 중대 사안이다.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이 나라 주인(헌법 제1조 2항)이고 언론의 자유(헌법 21조)와 알 권리가 있다는 헌법정신을 짓밟은 폭거이다.

▷언론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정체(政體)인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 1항)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공산국가나 전제군주국가와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언론 자유 없이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정부가 하는 일을 자세히 알고 감시할 수는 없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호도하고 있듯이 취재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화’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살헌(殺憲)이라고도 한다. 헌법을 파괴하는 군사쿠데타를 방불케 한다.

▷브리핑 제도에 의한 일방적 정책홍보와 취재 사전허가는 언론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만들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과 그 대변자인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것이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현 정권의 속살이다. 보수언론에 대한 골수에 사무친 증오심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 때 한 선서는 잊어버린 모양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파괴하는 악의(惡意)를 지닌 정권을 어떻게 ‘선의(善意)’로 볼 수 있겠는가.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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