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원수]이권 청탁 25억과 금배지

  • 입력 2007년 4월 30일 03시 01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씨가 25일 전남 무안-신안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자 과거 그의 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김 씨 측이 “검찰 수사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얘기까지 들리자 이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당시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조작할 수 있었겠느냐”며 어이없어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정에서까지 다 인정한 건데 허위 증언했다는 건가. 정말 조작이라고 생각한다면 재심 청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각종 비리에 연루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치인들이 선거와 사면을 통해 정계로 복귀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 씨는 그 가운데서도 조금 심한 사례다.

검찰의 수사 무마 의혹→특검→재수사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2년 7월 김 씨를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측근인 김성환 씨 등의 주선으로 기업체에서 각종 이권 청탁 명목으로 25억여 원을 받고 대기업에서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 원을 받은 뒤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였다.

당시 검찰은 “3남 홍걸 씨를 구속했으니 차남 홍업 씨까지 구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청와대의 직간접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뿌리치기도 했다.

압수수색 때에는 김 씨의 집 곳곳에 현금이 은닉돼 있어 검찰 관계자들이 놀라기도 했다. 결국 김 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4억 원이 확정됐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당선을 놓고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라거나 통합신당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구구하다. 그렇지만 비리를 저질러도 조금만 지나면 특별사면을 받고, 나아가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정치무대에 돌아오는 광경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검사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인터넷에도 “당선 소식을 듣고 귀를 씻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창피한 일이다”라는 등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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