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대통령의 착각

  • 입력 2007년 1월 12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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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改憲)을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次期)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 씨나 박근혜 씨가 먼저 제안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은 개헌은 누가, 언제 제안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나 수용자의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임채정 국회의장이 개헌의 운(韻)을 뗐을 때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지만 여당이 주장하면 정치 공작이라고 할 것이므로 제안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에 앞서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꺼내 정쟁화(政爭化)하고 추진해 나가기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2월 26일).

국민 신뢰 잃었으니

그랬던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개헌을 하자고 나섰다. 여당과의 사전 협의조차 없는 대(對)국민 특별담화를 통해서였다. 개헌 제안의 수순(手順)부터 잘못됐다.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에 앞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려면 입법부인 국회를 구성하는 여야(與野)에 사전 협조를 구하는 것이 필수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반대할 것은 뻔하지 않겠는가, 그럴 바에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한 뒤 여론의 힘으로 제1야당을 압박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바로 그 점에서 ‘뼈아픈 착각’을 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의 호소는 더는 힘을 갖기 어렵다.

이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봐도 명백하다. 여론은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 같으니 다음 정권 이후에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나를 위한 개헌이 아닌 나라의 미래를 위한 개헌’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개헌 제안의 주체나 시기보다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不信)에 있다.

필자는 지난해 6월 24일자 칼럼에서 ‘5년 단임제, 끝낼 때 됐다’고 주장했다. ‘87년 체제’의 권력구조인 대통령 5년 단임제가 ‘5년 무(無)책임제’로 변질되면서 그 효용성을 상실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 만에 총선(2008년 4월), 2년 후 지방선거(2010년), 다시 2년 뒤 총선(2012년 4월)과 대선(2012년 12월)을 잇달아 치러야 한다. 계속되는 선거와 그에 따른 정치 과잉(過剩)은 경제와 민생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맞춰 선거를 함께 치를 수 있도록 ‘선거주기 조정 단일 의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이다.

그 점에서 필자는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권력구조도 절대선(絶對善)일 수는 없다. 대통령 4년 연임제의 경우, 8년을 집권하기 위해 앞의 4년 임기는 대중의 인기에만 연연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주기를 조정하면 정치비용은 줄더라도 권력에 대한 견제 기능을 잃을 수 있다. 이렇듯 어떤 권력구조라도 득(得)과 실(失)의 양면성이 존재하는 이상 그것을 변경하는 데는 반드시 국민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국민 합의를 위해 노 대통령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개헌을 주도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가 대선을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불쑥 ‘개헌 카드’를 던져 놓고 개헌 반대가 정략적이라고 해서야 오히려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만 부각될 뿐이다.

이쯤에서 정리해야

노 대통령은 여론에 개의치 않고 개헌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렇게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고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야(野) 4당 모두가 돌아섰다. 이래저래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는 선에서 정리하고 뒷일은 다음 정권에 넘겨야 한다.

한나라당도 정리에 협조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개헌안을 내놓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추진할 개헌의 내용과 일정의 큰 틀이나마 국민 앞에 제시해 ‘개헌 파동’을 매듭지어야 한다. 무턱대고 안 된다고만 해서는 수권(受權)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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