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당신들 덕분입니다

  • 입력 2006년 12월 27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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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밑입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던 한 해였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널뛰는 집값, 이념 갈등으로 나라가 좀 시끄러웠나요. 설상가상으로 연말에 쏟아진 대통령의 ‘말 말 말’은 올해 숱한 내우외환(內憂外患)을 힘겹게 헤쳐 온 국민을 또 한숨짓게 했습니다.

갖은 풍랑에도 다행히 ‘대한민국호’는 좌초하지 않았습니다. 무능한 정부 여당이 국정을 표류시켰고, 국기(國基)를 흔드는 세력이 대로에서 활개를 쳤지만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토대와 맷집이 이런 정도의 도전을 버텨 낼 만큼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피와 땀으로 나라를 세우고 국력을 키워 온 국민이 있기에 어려움을 뚫고 수출 3000억 달러도 달성했습니다.

무엇보다 묵묵히 나라를 지킨 군인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건군 이래 군의 사기가 올해처럼 무참히 땅에 떨어진 적은 없습니다. 5월 경기 평택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대의 죽봉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은 장병들은 육체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겁니다. 국군 최고통수권자마저 군을 폄훼하는 판이니 때로는 누구를 위해 불침번을 서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동요하지 않고 늠름하게 불철주야 조국을 지킨 군의 헌신에 고개를 숙입니다. 비록 대통령은 올해 말에도 군부대를 찾지 않았지만, 국민은 당신들의 조국애에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한의 자랑스러운 군인입니다.

경찰 여러분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미국 경찰은 무서워해도 한국 경찰에겐 눈 하나 까딱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불법 시위대뿐만 아니라 취객, 교통법규 위반자, 범법자 중에도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행패를 꾹 참으며 범죄로부터 사회의 안전을 지켜 냈습니다. 경찰 여러분의 노고가 없었다면,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나라에서 치안과 공공질서가 이나마 유지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소리 없이 일하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올해엔 ‘일심회’ 등 간첩사건 수사로 바빴지요. 모처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친북좌파가 활개 치는 사회에서 간첩 수사가 얼마나 눈치 보이는 일이 됐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산업스파이 적발을 비롯해 국가기밀을 지키는 데 공헌한 바가 많습니다.

재해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소방서 119구조대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부산 가스폭발 현장에서 주민 2명을 구하고 숨진 서병길 소방위는 공인 정신의 표상을 보여 준 의인(義人)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말없이 뒷받침하는 분이 많습니다. ‘영웅’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우리 사회는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표현을 쑥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제가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새해에도 나라 사정이 편하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여러분 어깨가 더욱 무겁겠지요. 그래도 국민의 사랑과 신뢰 속에 가슴을 쭉 펴고 희망의 정해년(丁亥年)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행복하세요.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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