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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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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형 논술은 암기된 무력한 지식이 아니라 개별 교과 지식이 통합되고 교과 영역 간에 전이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창의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과정중심형 시험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해 보겠다는 명분하에 도입됐다. 통합교과형 논술이 지향하는 교육 방향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종래의 수능과 내신이 등급제로 전환되면서 학생의 우열을 가리는 변별력이 약화된 현 시점에서 논술이 대학 입학의 당락을 사실상 판가름하는 평가 도구가 됐다는 점,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의 내용이 사실은 본고사라는 혐의를 벗어버리기 어려운 논술의 왜곡된 변종이라는 점 때문이다.
통합교과형 논술을 두고 본고사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이 새로운 평가 방식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학교 현장에서는 아예 사교육 시장의 논술 강사에게 교육을 위탁하는가 하면,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이 내신-수능-논술의 평가 체제를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인식하면서 극심한 피로감과 고통을 호소한다고 있으므로, 논술 평가의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본래의 선한 목적과 의도와는 다르게 논술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논술 광풍과 함께 프랑켄슈타인이 가공할 파괴력을 발휘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논술형 평가는 존속시키되 평가 비중을 낮추고 본고사형 논술 평가가 아닌, 논술 주체인 고등학교 3학년 수준의 삶에 대한 성찰과 체험이 드러나는 글쓰기로서의 논술형 평가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논술형 평가가 지향하는 교육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논술이 지향하는 창의적 사고력은 강요된 학습과 평가 체제하에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경쟁 위주의 학교 교육을 개선하려면 교과목의 수를 줄여 주고, 교실 공간을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어떤 학생을 선발해서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는 대학 고유의 자율적 권한으로 두어야 한다. 수능과 내신의 등급제 역시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특목고 출신이다 아니다와 무관하게 내신성적은 학생의 성실성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에서, 수능 점수는 모두가 동의하는 표준화가 가능한 전형 자료라는 점에서 변별력을 회복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 당국은 본고사를 치르지 않고도 내신성적(GPA)과 표준화된 SAT 점수, 자기소개서, 추천서, 교외 활동 및 봉사 활동 실적, 심층 면접 등의 다양한 전형 자료와 방법으로 잡음 없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원진숙 서울교대 교수 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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