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청소와 주번

  • 입력 2006년 12월 13일 20시 01분


얼마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 소위원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깨끗한 학교 만들기’ 예산이 논란이 됐다. 정부가 5876개 초중고교에 학교당 1명의 청소인력 비용을 지원해 학생들 대신 용역업체에 청소를 맡길 수 있도록 238억여 원을 지원해 달라고 해 일부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청소도 교육의 일종’이라는 주장과 ‘학생들이 집에서도 청소를 안 해 봐서 청소할 줄을 모른다’는 현실론이 맞선 것이다.

어지르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어느 교장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은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할 만큼 청소하는 법을 모른다”는 실상을 털어놓았고, 교육 당국은 “젊은 교사들도 집에서 안 해 봐서 그런지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예산 지원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도시 상당수의 학교가 교실이나 복도 정리 등 ‘간단한 청소’는 학생들에게 시키지만 화장실과 급식시설 등 ‘궂은 청소’는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커 아줌마나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에 난 기사를 주의 깊게 읽으면서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똑똑하고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제 방, 제 교실, 제 학교 하나 제대로 치우고 정리 정돈하지 못한대서야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학생들에게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나 역시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못했으니 물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 세대가 초중고교에 다니던 시절, 청소와 주번은 모든 학생에게 부과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였다. 특히 주번은 한 주간의 전임 봉사자나 다름없어 아침 일찍 등교해 교실을 정리 정돈하고 화분에 물을 주거나 주전자 쟁반 컵 등을 닦아 놓아야 했다. 청소는 대부분 방과 후 분단별로 실시했고, 담임선생님의 검사를 맡은 뒤에야 귀가하는 학급도 있었다. 집에서 만들어 온 걸레로 높은 창틀에 올라가 유리창 닦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커닝 흡연 등으로 징계를 받을 경우 보름씩 화장실 청소를 하고 매일같이 반성문을 써 제출하는 징벌도 감수해야 했다. 혹 교장 선생님이 화단이나 복도에 떨어진 휴지나 깡통을 손수 줍는 것을 보면 교사나 학생들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청소는 아랫사람의 도리이자 곧 인격 수양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종교단체나 영성시설 같은 곳에서 수련의 첫걸음으로 청소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분기별로 반 대항 환경미화대회를 할 때에는 교실을 완전 리모델링하다시피 했다. 수성 페인트를 사다 교실 천장과 벽을 새로 칠해 각종 낙서와 발자국 등을 깨끗이 지웠고, 교실 바닥 가득 물을 뿌리고 세제를 뿌린 뒤 새끼줄을 뭉쳐 바닥에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훔쳐 냈다. 교실이나 복도의 나무 바닥에 양초를 칠해 가며 광을 내기도 했다. 개학 하루 이틀 전 슬그머니 학교에 나와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교실을 말끔히 정돈해 개학날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학급 임원도 있었다.

3년 동안 냉온수 물당번한 친구도

어디 청소당번과 주번뿐이랴. 고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박희용이란 친구는 정말 헌신적인 ‘물 당번’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온수와 냉수가 담긴 주전자 두 개를 들고 다니며 50명이 넘는 반 친구들의 도시락 뚜껑에 정성껏 물을 따라 주는 일을 3년이나 계속한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 년 내내 칠판지우개를 털어 놓은 친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단어와 한자숙어를 칠판에 적어 외울 수 있게 한 친구도 있었다.

창의성과 수월성 교육도 소중하고 이념과 통일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 주변을 스스로 깨끗이 정리 정돈하고,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봉사를 기꺼이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출발이자 궁극적 목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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