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노인들이 만드는 웹신문 ‘실버넷 뉴스’ 기자들

  • 입력 2006년 12월 1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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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넷 기자들이 1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회의실에서 ‘2006년 전체 기자단 회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앞으로의 취재 방향에 대해 2시간여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평균 연령이 66세인 노인들이지만 열정은 젊은 기자들 못지않았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실버넷 기자들이 1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회의실에서 ‘2006년 전체 기자단 회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앞으로의 취재 방향에 대해 2시간여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평균 연령이 66세인 노인들이지만 열정은 젊은 기자들 못지않았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실버 기자를 모집합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신문 등에선 볼 수 없는 실버세대와 관련된 정책과 제도에서부터 따뜻한 실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면 실버넷 뉴스 기자에 도전하세요.’

실버넷뉴스(www.silvernews.or.kr)의 홈페이지에 떠 있는 제5기 실버기자 모집 공고다.

만 55세 이상 무보수 자원봉사 기자를 모집한다.

실버넷 뉴스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4만여 명의 실버에게 인터넷 무료 교육을 실시했던 실버넷운동본부가 비정치 비상업적인 실버언론을 기치로 2001년에 창간한 인터넷 신문.

무보수 실버기자라고 우습게 여기면 큰 코 다친다.

응모했다고 다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기자로서 제대로 활동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발됐다고 해서 바로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무려 5, 6개월의 수습과정을 거친다. 나름대로 깐깐한 과정이다.

이 기간 중 3, 4회 서울의 실버넷운동본부에서 집체 교육을 받는다. 》

교육 과정은 취재 방법, 인터뷰하는 법, 기사 작성법, 사진 찍기 등. 강사는 신문과 방송의 현직 차장급 이상 기자들이다. 이들은 자원봉사 차원에서 노인 기자들에게 기자 교육을 해 주고 있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후 수습기간 중 매주 인터넷으로 과제물을 받아 취재하고 기사를 송고해 평가도 받는다. 평가 도중에 탈락하는 기자도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버넷 기자는 51명. 나이는 58세부터 82세까지로 평균 연령은 66세다.

실버기자들. 은퇴한 뒤에 기자가 된 실버들이 스스로 평가하는 삶은 흥미롭다. 기자라는 이름에는 사람을 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스스로를 젊어졌다고 평가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 공통된 말이다. 그저 무관심했던 주위의 갖가지 사물이 갑자기 관심과 취재의 대상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실버넷 4기 기자로 올해 8월부터 정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엄상흠(71·서울 강동구 천호4동) 씨의 방 벽에는 ‘press’라는 표식이 새겨진 행사장 출입증 수십 개가 장식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나 강동구 올림픽경기장에서 있었던 각종 행사의 주최기관들이 발행했던 언론인 출입증이다. 그는 기자가 되기 전에는 하루 종일 동네 노인들과 바둑을 두는 게 일이었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9시면 취재를 나간다. 주 출입처는 올림픽경기장과 코엑스. 이곳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취재거리가 많다. 행사기관마다 그가 실버넷 기자증을 제시하면 두 말 않고 출입증을 주면서 여러 가지로 취재 편의를 제공한다. 얼마 전에는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보리밭 밟기’ 재현 행사의 사진을 실버넷에 띄워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은퇴 전에 고속도로 휴게소 건설업, 예식장 경영 등을 했던 그는 지금은 부인(67)과 단둘이 살고 있고 생계에는 큰 걱정이 없을 정도다. 두 아들은 모두 국내외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대기업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스스로 3보 이상 걸을 때는 꼭 휴대한다는 그의 취재 가방에는 디지털카메라, 취재수첩, 행사장에서 받은 취재자료, 야외 취재용 벙거지 모자, 방한용 머플러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기자가 된 뒤에는 모든 게 취재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관심도가 달라졌고 행동이 활기차게 변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또 기사를 올릴 때마다 며느리들이 한마디씩 아부(?)의 말을 해 주고 주위 사람들도 관심을 표시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버넷 3기로 현재 1년 반 동안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권오갑(82·서울 금천구 시흥본동) 씨는 최고령 기자다. 그는 대학 교수 출신으로 침례교신학대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6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끔씩 의뢰가 들어오는 번역 일을 하다 우연히 실버넷 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는 주로 지역사회의 복지관 노인학교 등을 상대로 미담기사를 많이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또 남녀노소 간 분별과 존중이 사라져 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칼럼형 기사를 게재하기도 한다.

팔순이 넘은 기자가 취재를 하러 가면 상대편의 반응이 어떨까? “상대편에서 한 번도 난색을 표명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협조해 주고 자료도 잘 챙겨 주지요. 물론 노인시설을 주로 취재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호응도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한 달에 5, 6건의 기사를 띄운다는 권 씨는 재미와 취미 그리고 보람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순자(67·여·경기 시흥시 정왕동) 씨는 실버넷의 교육문화부장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 20년 이상 살다가 7년 전 귀국한 황 씨는 실버넷에 생활영어 한마디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남편과는 오래전 사별했고 2남 1녀의 자녀도 모두 출가해 현재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주로 고발이나 시정촉구 기사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으로 잘못된 일이나 납득이 안 가는 제도 등에 대해 비판기사를 작성한다. 그는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 다른 사람이 공감을 표시해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무보수 자원봉사 기자지만 이 일을 하고 나서부터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취재 대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실버넷 기자단 회의 가보니

실버넷 기자들이 1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회의실에서 ‘2006년 전체 기자단 회의’를 열었다. 한 해의 활동 결과를 서로 평가하고 내년 활동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모두 자기 돈으로 여비를 써 가며 회의에 참석했다.

먼저 국내외에서 실버넷 기자들을 대폭 확대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지금까지는 한 기에 10∼20명의 기자를 선발했으나 100명씩으로 대폭 확대하고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동남아 호주 등지의 은퇴 한인들도 현지 기자로 영입하자는 것이었다. 또 실버들이 불편해하는 문제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기사를 많이 개발하자는 논의도 진행됐다. 아울러 이제는 젊은 층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기사를 띄우는 문제도 논의됐다. 다들 진지한 모습이었다. 어느 종합일간지 편집국 회의 같았다.

2시간여의 회의가 끝나고 인근 삼겹살 집에서 식사 겸 친교의 자리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겪었던 갖가지 무용담과 뒷이야기를 주제로 한 대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은퇴 후에 새로 시작한 무보수의 일에 이처럼 소속감과 동료의식을 느끼며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실버넷 뉴스는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정태명 교수가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터넷 언론이다. 한국정보처리학회가 주축이 됐던 실버넷운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실버들의 뉴스를 실버들이 전한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2004년부터 이 실버운동본부가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문화진흥원으로 관리가 넘어간 뒤 뉴스 조직만 정 교수가 계속 맡고 있다.

실버기자 교육과 기사 데스킹 등에는 동아일보 최수묵 기획위원과 KBS 보도국 임흥순 차장, 백전호 씨 등 현직과 전직 언론인들이 참여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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