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출세가 그리 좋은가

  • 입력 2006년 10월 26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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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해군 출신으로, 아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 안보가 흔들리는 상황을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를 대통령님과 국민에게 분명히 알리기 위해 국방장관 직을 사퇴합니다.”

물론 상상이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을 때 나는 이런 말이 나왔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윤광웅 송민순 반기문의 ‘변신’

세상에 알려진 윤 장관은 친북반미 코드와 거리가 멀었다. 해전에선 압도적 우위가 아니면 몰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는 그는 한미연합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해 왔다.

원래 그 코드가 아니기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미국통으로 꼽혔다는 그는 3년 전 “외교관은 국가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때 보람을 찾는 직업”이라고 본보에 썼고, 2년 전엔 “닫힌 자주를 하면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으로선 국제 미아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386이나 정치꾼도 아니고, 현실을 알고도 남는 관료들이 현실을 무시한 코드에 충성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다. 굳이 이해를 하려 들면 불우했던 과거를 참작할 수 있다. 윤 장관은 1999년 해군참모총장 후보로까지 거론됐지만 탈락해 예편한 뒤 부산상고 후배인 대통령 덕에 컴백했다. 외무고시 9기 중 가장 앞서가던 송 실장 역시 노 정부 초기까지 ‘그동안 주류였다’는 이유로 소외됐다가 6자회담 ‘성공’ 주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권력을 아예 몰랐으면 모르되, 한번 알고 난 뒤 놓치면 등이 시리다는 게 그 바닥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사나이는 목숨도 바친다고 했다. 그나마 유능한 이들이 이 자리에 있기에 ‘해괴한 코드’ 속에서도 상황이 이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이들과 비슷한 과거를 갖고서 코드의 지뢰밭을 극복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늘날 유엔 사무총장에 등극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사퇴를 고려한 적이 없단 말입니까?”

내가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역시 유능하고 신중한 데다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아 신망을 얻었던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강연할 때 청중이 물은 말이다. 새로 나온 전기(傳記) ‘군인’에서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묘사된 파월의 답은 간단했다. “없습니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파월이 능력과, 양심과, 그가 사랑한 조국을 따라 “이라크전쟁 반대!”를 밝히며 사임했다면 전쟁을 막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 하듯 ‘국익 외교’에 열심이었다면 우리나라가 ‘국제 왕따’는 안 됐을 수도 있다.

이처럼 충성스럽거나 순진하거나 또는 스스로 합리화해 가며 정치놀음에 이용되는 이들을 레닌은 ‘쓸모 있는 얼간이(useful idiot)’라고 했다. 권력자가 얼마든지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이런 충복이 수두룩해서다. 나라를 망치는 이들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이다.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에 복종한 평범한 관료들을 두고 ‘악의 평범함(banality of evil)’을 고발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 대상 될 수도

노 대통령이 ‘만났다’고 주장했던 링컨 대통령은 실제론 최강의 내각을 위해 정적(政敵)들까지 등용한 리더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코드는 너무나 확고해서 코드 인사를 결코 버리지 않을 거라는 게 나의 슬픈 예감이다.

‘임명되면 대단히 기쁘고, 물러나면 무척 아쉽고, 한번 해본 뒤엔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그 자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면 누구도 말릴 순 없다. 다만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다면, 지금의 출세지향적 관료들은 언젠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기 바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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